갓 출간한 책의 전문을 인터넷으로 공개한다면 책 판매량은 정말 줄어들까.

당연한 듯 보이는 이 '상식'을 깨뜨린 시도가 얼마전 등장해 눈길을 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글 관련 블로그 '구글 블로그스코프'(Google Blogoscoped; blog.outer-court.com)의 운영자 필립 렌쎈(Philipp Lenssen)은 지난 5월 31일 <구글을 재미있게 사용하는 55가지 방법>(55 Ways to Have Fun With Google)이란 책을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 자가출판 서비스인 룰루(www.lulu.com)를 통해 출간했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부터다. 책을 내놓은 지 한 달이 채 안 된 6월 24일, 렌쎈은 자신의 책 전문을 PDF 파일로 인터넷에 공개했다. 책의 일부를 블로그나 웹사이트에 맛보기로 공개한 일은 많지만, 갓 출간된 책 내용 전체를 누구나 내려받아 볼 수 있도록 공개한 일은 극히 드물다.
렌쎈은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한 1페이지짜리 웹사이트(www.55fun.com)도 열었다. 사이트를 방문하면 모두 228쪽인 PDF 파일 전문을 내려받을 수 있다.
단 이 파일은 'CCL2.0'(Creative Commons License 2.0)이란 저작권이 적용됐다. CCL은 최소한의 저작권 규약을 지키는 조건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고자 도입된 세계적 규약이다. 이 규약에 따르면 ▲원저작자를 표시하고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며 ▲원문 내용을 변경했을 때는 반드시 원문과 동일한 조건으로 배포한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파일을 복사하거나 공유, 수정, 배포해도 된다.
렌쎈이 책을 출판하는 데 이용한 룰루 서비스도 이 모험적인 시도에 한몫하고 있다. 룰루는 '디지털 콘텐츠를 위한 열린 장터'를 표방한다. 세계적 공개SW 기업인 레드햇의 공동설립자인 밥 영(Bob Young)이 2002년 이 서비스를 처음 선보였다. 이용자는 룰루 서비스를 이용해 자신의 디지털 콘텐츠를 일반 종이책과 전자책, 음악앨범이나 사진첩 등으로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완성된 저작물을 룰루를 통해 직접 사고 팔 수 있다. 디지털 DIY 출판서비스와 e장터가 결합된 형태다. 직접 제작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계약조건이 붙는 출판사를 거칠 필요가 없다. 덕분에 렌쎈도 온라인으로 책 전문을 자유롭게 공개할 수 있었다.
이런 렌쎈의 시도를 보고 있노라면 2000년 이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MP3 파일공유 논쟁이 떠오른다. 당시 국내에선 '소리바다'로 대표되는 MP3 공유서비스를 놓고 누리꾼과 음반사가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쟁점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해 여기서 다 소개하긴 어렵지만,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파일공유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MP3 파일공유가 홍보효과를 유발해 음반 판매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음반사는 앨범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파일공유를 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6년이 지난 지금, 주요 음반사들은 음악앨범 판매 대신 음원을 활용한 다양한 수익모델을 만들어 주요 수익원으로 삼고 있다. 음반판매는 이미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비즈니스 모델이 됐기 때문이다. 렌쎈 또한 책 판매수익이란 고전적 출판 비즈니스 모델 대신 책 내용을 자유롭게 공개하고 그 댓가로 발생할 '파급효과'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효과는 이미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그의 책을 중국어로 번역하려는 시도가 이미 시작됐다. 그것도 서로 다른 두 가지 버전으로 말이다. 이용자가 자유롭게 참여해 내용을 채워나가는 참여형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처럼, 렌쎈의 책도 전세계 누리꾼에 의해 계속 내용이 향상되면서 발전해나갈 것이다.
렌쎈의 시도는 자유로운 정보공유가 이윤 추구와 정면 충돌하지 않을 수 있음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책 내용 전체를 인터넷에 공개했음에도 종이책이 잘 팔린다면, 그는 '자유로운 정보공개'와 '책 판매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된다. 비슷한 시도가 전세계에 걸쳐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 멀리 보면, 렌쎈의 이런 시도는 상업성과 공공성의 조화를 어떻게 이뤄야 할 지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모험'에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