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휴대폰을 쓰고 있는데 어떤 서비스가 매우 불편하고 불공정하다. 고맙게도 정부가 나서 이 불편을 해소할 것을 이동통신회사에 명령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년이 지나도록 이동통신회사들은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다. 그러다 뒤늦게 문제를 고쳤다고 발표한다. 발표 내용은 "앞으로 새로운 휴대폰을 사는 고객들은 그런 불편이 없게 하겠다 "는 것.
그럼 나는?
불편한 것은 나였는데, 개선했다는 것이 앞으로 신규 고객에게만 해당된다면. 그렇다면 이것을 개선된 것이라고 봐야하나, 나한테는 아무것도 개선된 것이 없는데.
SK텔레콤과 KTF가 28일 무선인터넷 접속 개선 단말기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존 고객들을 위한 업그레이드 계획은 명확하지가 않다. 대부분의 기존 무선인터넷 이용자들은 여전히 불편한 접속 환경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24일 통신위원회는 이동통신사의 무선인터넷망 개방 관련 불공정행위에 대해 제재했다. 특히 위법성이 큰 SK텔레콤에게는 과징금 15억원을 부과했다. 이통 3사는 무선인터넷 초기 접속시 단말기 표면에 부착된 접속버튼(핫키)을 이용해 자사 무선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우선적으로 접속되도록 하는 방법 등으로 경쟁 사업자에게 동등 접속의 기회를 제한했다는 것.
그런데 SK텔레콤과 KTF는 1년간 시간을 끌다가 이제서야 이를 시정하면서, 무선인터넷을 손쉽게 사용하려면 휴대폰을 바꾸라는 설명이다. SK텔레콤이 출시한 팬텍& 큐리텔 PT-S280과 KTF가 조만간 출시할 삼성SPH-V9500은 외부 무선인터넷 사이트로의 접속을 보다 편리하게 접속메뉴 체계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PT-S280 외에 이미 출시된 IM-U130의 경우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면 개선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연내 출시되는 팬텍과 삼성전자 단말기에도 확대 적용 된다고 밝혔다. 또한 내년 1월부터 출시되는 모든 단말기에는 개선된 무선인터넷 초기접속메뉴를 기본으로 탑재하여 출시한다는 방침이다.
이형희 SK텔레콤 CR전략실장은 "정부의 무선망개방 정책에 호응하여 여타 포털 사업자들이 서비스를 원활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여건조성에 최선을 다 하겠다" 면서 "메이저 포털들이 모바일 사용자를 위해 적극적인 서비스 개발과 투자를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존 고객에 대한 지원책에 대해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일단 신규 단말기 고객들에게만 적용시켰다"고 전하고 "기존 고객들을 위해서는 제조업체가 출시한 수많은 단말기를 테스트해야 된다"고 답했다. 일단 제조업체들에게 화살을 돌린 것. 이 관계자는 기존 고객들에 대한 정확한 계획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이동원 KTF 신사업전략실장은 "이번에 출시되는 무선인터넷 접속 개선 단말기가 확대되고, 메이저포털을 중심으로 모바일 서비스를 강화하게 되면 무선망 개방은 더욱 활성화 될 것"이라며 "고객은 앞으로 무선인터넷을 통해 보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 등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역시 미래형이다. 개선된 서비스는 신규 고객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동통신회사가 아니라 휴대폰 제조사에서, 기존 휴대폰 고객에게 이동통신사의 개선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는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제조업체들은 한결같이 "보다 많은 휴대폰에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미 출시된 제품에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할 경우 서로 충돌이 날 가능성이 있어서...", "만약에라도 소비자들의 편의를 저해하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말로 피해간다. 이미 출시된 제품 중 한정된 모델과 추후 출시될 모델에 적용하게 됐다는 얘기다.
SK텔레콤이나 KTF와 달리 LG텔레콤은 올초부터 시정명령을 받아들여 개선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로 출시되는 휴대폰에서만 개선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시정 명령을 내린 통신위원회에서는 관련 내용에 대해서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통신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1년전 시정명령 조치 사항이고, 또 당시 담당자들도 모두 교체됐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대답이다.
늘 이렇다. 개선된 서비스나 기능은 기존 고객들은 제쳐놓기 일쑤다.
한편, 이번에 2대 이통사가 무선인터넷 접속 환경을 교체하긴 했지만 당장 네이버나 다음커뮤니케이션, 네이트 등 메이저 포털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포털업체의 한 관계자는 "무선인터넷 접속 환경이 개선된 것에 대해서는 환영하지만 네트워크망 자체의 개방이 없이는 포털들의 무선인터넷 사업 활성화는 요원하다"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단순한 접근성 개선만으로 무선인터넷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