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네트워크 장비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동안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가 관련 시장에서 독주를 해왔는데 도전자들이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한번 시스코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시스코는 KT와 SK텔레콤의 휴대인터넷 '와이브로'의 네트워크 백본 시장을 석권했다. 내년에 두 통신회사가 와이브로에 투자를 하면 할수록 시스코도 덩달아 실적이 올라가게 된다. 특히 시스코는 지난해말과 올해 있었던 KT와 하나로텔레콤, 데이콤의 인터넷 백본 라우터 시장에서 경쟁사인 주니퍼를 물리치고 테라비트 라우터의 공급권을 따내면서 테라비트 라우터 시장도 석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스코가 유지보수 비용 인상방침을 정하면서, 도전자들에게 틈새가 생겼다. 케이블TV 시장에서도 '닥시스 3.0'과 관련해 시스코가 더딘 행보를 하는 것도 후발 사업자들에게는 호재 중 하나다. 시스코는 '닥시스 2.0'을 빠르게 도입해야 한다고 고객들을 설득해 관련 시장을 장악했지만 '닥시스 3.0'에 대해서는 서두르지 말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닥시스(DOCSIS: Data Over Cable Service Interface Specifications)는 케이블 모뎀 통신의 표준으로 케이블TV사업자(SO)와 가입자의 TV 셋톱박스 및 컴퓨터 사이에 주고받는 데이터 신호를 제어하는 표준 인터페이스다. 현재 우리나라 SO들은 닥시스 2.0을 사용하고 있는 가운데 닥시스 3.0 표준이 조만간 제정될 전망이다. 

경쟁업체들은 틈새를 노리면서 제품과 조직, 파트너 정책들을 손보고 있다. 이미 알카텔이 루슨트를 합병해 알카텔-루슨트라는 통합 회사가 생겨났고, 쓰리콤도 중국 화웨이와 합작해 설립했던 화웨이-쓰리콤의 지분 전량을 인수하면서 기업 시장 공략을 위해 나서고 있다. LG히다찌도 KT의 IPTV 서비스 사업에 장비를 공급하면서 도전자의 대열에 명함을 내밀고 있다. 주니퍼도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알카텔-루슨트는 한국알카텔-루슨트 초대 지사장으로 양춘경 루슨트코리아 지사장을 임명했다. 알카텔은 라우터와 스위치 제품을 공급하면서 시스코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여전히 마이너 업체다. 하지만 기업, 대학시장과 통신 시장에 라우터와 스위치 제품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유럽 시장과 아시아 시장에서의 선전을 국내에 어떻게 적용할지가 관건이다. 특히 최근 이동통신사나 유선 통신사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서비스라우터 시장에서 시스코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한국알카텔 관계자는 "통신 장비 시장에서 쌓은 기술들을 네트워크 장비에 접목시켰다. 이 때문에 고객들의 반응도 괜찮은 편"이라고 전했다.


한 때 기업용 백본 스위치 시장의 강자였던 쓰리콤도 명가 재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쓰리콤은 최근 중국 화웨어와 합작 설립한 조인트벤처인 화웨이-쓰리콤 지분 49%를 화웨이테크놀로지로부터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쓰리콤은 백본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시스코와 후발 주자들의 경쟁에서 탈락하면서 중견중소용 제품만을 공급해 왔다. 이후 다시 백본 스위치 시장에 진출하면서 중국의 통신 네트워크 장비 개발 업체인 화웨이와 조인트벤처를 설립했다. 제조 단가를 낮춰 가격 경쟁력을 가져가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화웨이-쓰리콤이 이미 쓰리콤이 진출해 있는 시장에도 진출해 소비자들의 혼란을 야기시켰다. 시스코를 잡기 위한 전략이 오히려 쓰리콤과 화웨이-쓰리콤간 장비 가격의 차이, 파트너 난립 등으로 자중지란에 빠질 상황이 도래했던 것. 화웨이-쓰리콤과 쓰리콤 장비는 하드웨어는 동일하지만 제공하는 소프트웨어에는 약간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쓰리콤과 화웨이-쓰리콤코리아로 나뉘어 영업을 전개해 왔다. 이번 쓰리콤이 49%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100%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쓰리콤의 한 관계자는 "쓰리콤이 모든 지분을 가지고 있는만큼 이제 확실한 통제가 가능해졌다"고 전하고 "백본 스위치 시장에서 소기의 성과도 올리고 있다. 이제 혼란스러운 상황도 정리되고 있어 경쟁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고객들 입장에서는 시스코의 독주에 내심 불만을 토로해온 것도 사실이다. 장비 관리측면에서는 단일 장비를 구성해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긴 하지만 업체에 끌려다닐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유지보수 비용을 올리는 문제는 오라클이 데이터베이스 유지보수료를 현실화하겠다고 밝혔을 때 고객들의 불만이 폭등한 것과 유사하다.

고객들은 특정 장비 업체들이 시스코와의 경쟁에서 앞서나가다가도 2~3년이 지나면서 시스코의 공세에 맥없이 나가 떨어지는 것을 자주 경험한 터라 새로운 업체의 출현을 반기면서도 구매에는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시장에서 호평을 받거나 대형 고객사를 확보한 네트워크 업체들이 새롭게 시장에 뛰어들면서 제품 선택의 폭도 넓힐 수 있고 가격 조정권도 가질 수 있게 됐다. 시스코의 독주에 새로운 도전자들의 반격이 흥미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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