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6일 한국IBM과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가 공동으로 통합 커뮤니케이션(UC ; Unified Communication)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통합 커뮤니케이션 구축을 위해선 기존 전화번호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습니다.

왜 이런 설명을 달았을까요? 기업 고객들은 전통적인 구리선 중심의 교환기를 IP 중심의 IP PBX로 교체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새로운 인프라를 활용해 빠른 시일내 투자대비 효과를 달성하고 싶어하는 데 070 인터넷 전화는 번호 체계를 모두 대대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뜩이나 많은 투자가 일어나야 하는 분야인데 번호체계까지 바꾸면 단기간 성과보다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문제제기입니다. 사내 명함을 모두 교체하는 것은 둘째로 하더라도 이렇게 바뀐 연락처를 고객사나 파트너사에게 다시 주지시켜야 합니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 자금이 투여돼야 하는데 누가 이런 일을 단행하겠습니까?


전화 사업자인 KT나 하나로텔레콤, 데이콤 등 기간 통신사업자들도 070 인터넷전화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자사 번호체계를 모두 교체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인터넷전화건 기존 구내전화건, 구리선 전화건 전화 상품을 늘려서 전화 매출을 올리면되지 굳이 070으로 모두 교체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나로텔레콤이나 데이콤은 기존 구리선의 시내전화번호 이동성 시스템을 정비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만 이도 여의치 않습니다. 현재 시내전화번호 이동성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는데 좀 더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KT 교환기를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이 분야에 4000억원이 투자돼야 합니다. KT 입장에서는 아무런 혜택도 없이 장비 투자에만 '피 같은 돈'이 투자돼야 하는 데 환영할 상황이 아닙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전세계 시내전화번호 이동 현황에 따른 점검에서 국내 시장이 뒤쳐지지 않는다고 보고 현재의 번호이동 시스템을 유지할 상황입니다.


반면에 별정 사업자인 삼성네트웍스는 070 번호를 부여받고 전화사업에 뛰어든 만큼 이런 입장과는 전혀 다릅니다. 모든 번호를 070으로 교체했습니다. 하지만 사업 1년이 지난 현재 성과는 미비합니다. 초기 투자비가 많이들고 번호도 바꿔야하는데 아직까지 이점이 많지 않은 고객들이 도입을 꺼려하기 때문이죠.


이런 가운데 정보통신부가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성을 검토한다는 아이뉴스24의 기사가 눈에 띕니다. 기사에 따르면 정통부 조경식 통신경쟁정책팀장이 "인터넷전화의 번호이동성과 긴급통신, 서비스품질보증과 연계한 망이용대가 재산정 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조경식 팀장은 "내년에는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는군요.


현재 번호이동은 시내면 시내, 이동통신이면 이동통신, 즉 같은 역무 분야에서만 한정돼 허가가 이뤄져 있습니다. 같은 시내 전화와 시외전화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인터넷전화 역무와 기존 시내외 역무는 엄연히 구분돼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서로 다른 역무간 번호이동 사례를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 정통부의 정책 총괄 팀장이 긍정적인 메시지를 시장에 던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시장에서는 반길 수 있는 상황입니다.

기사만 보면 뭔가 금방 추진될 것 같은데 국가 정책이 어디 그렇습니까? 정보통신부는 연구를 시작했다는 점에 더 의미를 두는 것 같습니다. 박민하 정보통신부 사무관은 "어디까지나 연구가 진행중이라는 것이지 도입하는 의사 결정이나 또는 다른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발을 뺍니다. 박 사무관은 070 인터넷전화 활성화를 위해 전화사업자들이 번호이동을 꾸준히 요구해오지 않았느냐는 질의에 대해서도 "사업자들이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정부에서 먼저 연구가 시작됐다. 전혀 다른 역무간 번호이동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모범 답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통합 커뮤니케이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시대를 이끌 한 주역으로 등장할 것 같았던 070 인터넷전화. 글로벌 테크니컬 컨설턴트들은 기존 번호 체계를 고수하라고 기업 고객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있고, 정부도 연구단계니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난관을 어떻게 뚫고 나갈지 궁금해집니다.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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