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24일 IBM이 우리나라에 '유비쿼터스컴퓨팅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정부나 업계, 언론 들은 외국 IT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센터 유치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최근엔 이렇게 설립된 연구개발센터가 애초의 취지대로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얘기들도 나오고 있지만.

국내에 R&D센터를 개설하는 외국 IT기업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R&D센터를 설립한 IBM, 오라클(oracle), BEA, 마이크로소프트,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을 비교해보면, 이들 업체들의 전략이나 국내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 이들이 왜 국내에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지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이들이 투자한 분야나 속내를 살펴보자.


마이크로소프트와 썬마이크로시스템즈는 3년간 각각 300억원, 400억원을 투자하는데 이들은 국내 휴대폰 제조사나 셋톱박스, 휴대용멀티플레이어단말기 등 하드웨어 업체들과의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투자금액이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R&D센터에 비해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IBM이나 오라클, BEA는 3년~4년간 100억원~120억원 정도를 투자한다. MS나 썬이 기존 고객 지원이 1차적 목적이라면 이들은 현재 변화되는 시장 상황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IBM의 R&D센터가 연구하는 분야는 IT와 통신기술을 자동차와 결합하려는 텔레매틱스 기술과 모바일 정보통신기기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분야다. 텔레매틱스와 관련해 한국IBM은 아픈 추억이 있다. 한국IBM은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에 텔레매틱스 솔루션을 판매하기 위해 많은 접촉을 시도했는데 3대 통신사가 모두 솔루션을 독자 개발하거나, 협력 업체를 통한 내부 개발이라는 의사결정을 내렸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특정 솔루션을 도입하기보다는 일단 내부적인 기술 활용과 축적이 중요하다고 판단을 내렸던 것.


이런 움직임의 하나로, SK텔레콤은 자바ME(모바일에디션) 중 휴대폰 국제 표준화 분야에서 텔레매틱스에 대한 특허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분야는 썬이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자바 기술을 기업용 업무 시스템에 적용하는 쪽에서는 IBM이 주도하고 있지만, 휴대폰이나 셋톱박스, 기타 모바일 장비 등에서는 IBM이 썬을 뒤쫓고 있는 상황이다. IBM의 반격이 가능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날 듯.

썬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국내 투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팬택앤큐리텔과 같이 세계 무대를 상대하는 국내 휴대폰 제조사의 능력 때문이다. 이들이 일본보다 국내에 우선 투자한 이유는 이들 휴대 제조사들이 그만큼 세계 시장에서 무시못할 업체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투자하기 전까지는 휴대폰 업체들은 자신들이 썬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솔루션을 도입해, 개발하던 휴대폰을 테스트할 때마다 미국 본사 기술지원 센터에 보내고 그 결과를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다시 받아보는 등 많은 불편을 감수해 왔다. 이런 제조사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국내에 관련 센터를 신설할 수밖에 없었던 것.

오라클연구소는 임베디드소프트웨어, u시티, RFID 등 우리나라 정부가 나름대로 전략적 계획을 갖고 추진하는 '이머징 마켓'을 겨냥하고 있는데, 이전 업체들 센터와 차이점이라면 한국의 센터장이 중국 센터도 총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 국내 고객들만 겨냥하고 시설을 구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라클은 메인메모리 데이터베이스(MMDBMS) 세계 1위 업체인 타임스텐을 인수한 후 전세계 휴대폰 업체나 통신 장비 혹은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고 이 전략은 국내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u시티와 RFID 분야는 물리적으로 많은 IT 장비들이 연동돼야 한다. 서로 다른 단말기들을 통해 수많은 서비스들이 제공돼야하기 때문에 이를 원활히 연결할 솔루션과 데이터 처리 솔루션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

BEA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서비스 지향 아키텍처(SOA) 분야와 통신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설립한 R&D 센터의 소장이 통신 전문가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최근 전세계 유무선통신사들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속에서 얼마나 빠른 시일 내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출시할 지 고민하고 있다. 이런 고민은 IMS(IP Meltimedia Subsystem)와 같은 새로운 표준형 인프라로 해결할 수 있다. 전통적인 통신 기술에 IP 기술이 계속 적용되고 있는데 차세대 통신 시스템은 IP를 더 원활히 지원할 수 있도록 변모하고 있다.

이 분야는 전통적인 미들웨어 업체들의 시장이다. 통신 서비스 자체가 이제는 전용 서버 위에 소프트웨어가 얹어져서 제공되고 있다. 개발 시간도 단축되고 협력 업체와의 협조도 신속히 진행할 수 있다. 미들웨어 업체들 입장에서는 없던 시장이 아주 크게 생겨나고 있다. KT, SK텔레콤이나 KTF 등의 요구 사항을 적절히 지원할 조직과 국내 통신 전문 기업들과 협력해 국내 고객 입맛에 맞도록 적용한다. 이렇게 적용된 솔루션 등은 해외 통신사에게도 판매될 수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 셈.

이들은 단순히 전세계 IT 매출의 1%에 불과한 국내 시장만을 노리고 투자한 것은 아니다. 자동차, 금융, 통신, 제조, 철강, 건설, 유통, 공공 등 전 산업 분야에서 두루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기업을 확보한 나라는 일본을 제외하고 한국만한 나라가 없다. 따라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요구를 수용하면, 각 부문별로 경쟁력 있는 솔루션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또 이들이 세계적으로 진출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지원이 곧 동반성장을 의미한다.

국내 시장과 기업들이 세계 대형 IT기업들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그러나 안타까움은 남는다. 이런 각 부문별 산업 주체들과 동반 성장하는 국내 IT 솔루션 업체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외국계 기업들의 연구개발 센터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외국 기업들이 주목하는 분야에서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는지, 이들이 국내 산업별 주체들과 동반 성장하기 위해서 개선돼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때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해외 이곳 저곳에 연구개발센터를 세우고 그 나라에서 그 연구센터의 성격을 가지고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정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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