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위안요? 너무 비싸요.”

 “이 시계 명품이어서, 원래 200위안인데. 그러면, 60위안으로 깎아 줄 테니 사요.”

 “그래도 여전히 비싸요.”

 “젊은이, 얼마면 살 건데요?”

 “15위안요.”

 “15위안? 그렇게 팔면, 난 남는 게 없는데.”

 “그럼, 됐어요. 다른 가게로 가보죠.”

 “아, 젊은이. 가지 말고 와 봐요. 정말 너무 많이 깎는다. 좋아. 20위안. 더는 못 낮춰요.”

 “20위안요? 좋아요. 살게요.”

 

 지난 8월 말 어느 날 오후 4시, 중국 베이징 시내 동쪽에 있는 ‘챠오와이 위에시우’ 시장의 시계 매장. 북한의 20대 후반 젊은이가 시계 판매점 중국인 주인과 시계 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흥정을 끝낸 북측 젊은이는 지갑에서 중국 돈 20위안(1위안은 120원 정도)을 꺼내 주인에게 건넸다. 그는 시계를 손목에 차보고는 흡족해 했다.

 주인은 뒤돌아서 가는 북측 젊은이를 보며 “한국 사람들만 값을 너무 많이 깎는 줄 알았는데, 조선(북한) 사람들도 뒤지지 않는다”고 한마디 던졌다.

 북측 젊은이가 산 시계는 이른바 ‘짝퉁’이라고 불리는 모조품.

 챠오와이 시장의 시계 매장들에는 ‘로렉스’ ‘엠포리오 아르마니’ ‘피아제’ ‘까르띠에’ 등 해외 유명 브랜드가 붙은 모조품 시계들이 진열돼 있었다. 진열대 외에 주인이 꺼내놓는 철제가방에도 시계가 빼곡히 들어 있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뭣 모르고 관광가이드에 이끌려 '짝퉁 시장'으로 소문난 이곳에 처음 오게 됐다.

 “짝퉁 시장이라는 곳에 와서 물건을 사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대충 보면, 진품인 줄 착각할 정도란 말입니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보니까, 진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달라는 대로 돈을 다 주고 사서는 안되죠. 최대한 값을 깎아서 사야죠. 진품이면, 값을 80%나 깎아줄 수 있겠어요?”

 그는 이곳에 들어서기 앞서 가이드와 다른 사람들한테서 "바가지 쓰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주인이 100위안을 부르면, 20위안 정도에 사라고 했단다.

 “외국 상표 이름은 다 들어보지 못했지만, 이게 그 짝퉁 명품 시계들이라는 겁니까? 그런데 내가 봐도 진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짝퉁에는 속지 않아요.”  옆에 같이 있던 그의 동료가 거들었다.
 주위의 시계 매장에서도 다른 북측 사람들이 시계를 구입하고 있었다. 이들도 그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값을 적지 않게 깎아 샀다. 맘에 드는 시계를 찾아 매장 몇 군데를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본인이 찰 시계를 찾고 있냐”고 물으니,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줄 시계를 산다”고 답했다.

 30대 중반의 한 북측 사람은 6살짜리 아들에게 선물을 줄 거라면서 어린이용 시계를 골랐다. 그는 시계점 주인과 흥정 끝에 30위안을 깎아 13위안에 아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가이드와 남측 선생들이 ‘짝퉁’, ‘짝퉁’ 하길래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하고 궁금했는데요. 짝퉁’이 겉보기에는 진짜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면 고장이 나고 시계줄도 탈색되고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이런 걸 달라는 데로 다 주고 샀다가는 큰 손해죠.”

 


 베    베이징에서 '짝퉁'시장 중 하나로 소문난 '챠오와이 위에시우' 시장내 시계 판매점. 북측 참관단 일행이 시계를 고르고 있다.


 

  

 

베이징 '챠오와이 위에시우' 시장내 시계 판매점에 진열된 시계들. 해외 명품 시계의 모조품들이다.


 북측 일행은 핸드백, 지갑을 파는 매장으로 가봤다.


 ‘버버리’ ‘구찌’, ‘샤넬’ ‘루이뷔통’ 등의 유명 상표가 붙은 모조품 핸드백이 눈에 띄었다.

 한 가게 점원이 핸드백과 가방을 들어 보여 주면서 북측 사람들을 붙잡았다.

 “와, 진품 같네요.” 한 20대 후반 젊은이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30대 중반 북측 남자가 말을 잘랐다.

 “이 지갑 짝퉁티가 나는데요. 가죽이 아니고 비닐 원단인 것 같습니다. 바느질 선도 삐뚤삐뚤 하고요. 보풀도 좀 일어났네요.”

 그가 하나하나 지적할 때마다 옆에 있던 동료들도 “정말 그렇네”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지갑과 핸드백을 내려놓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른바 ‘SA급’이라고 부르는 최고급 모조품도 있다는 말을 하자, 그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조품 규모에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는데, 관광버스에서 막 내린 남측 관광객들이 건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옆에도 관광버스들이 주차장에 즐비했다.

 “저 사람들도 여기 있는 물건들이 짝퉁이라는 것을 알고 올 텐데, 속아 넘어가서 제값 다 주고 사지는 않겠죠?” 벤치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백화점으로 떼지어 들어가는 관광객들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이들은 다름아닌 북한 전자정보통신 분야 연구원들이다.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콤퓨터기술대학 등을 나와 현재 북측의 대표적인 전자정보통신 연구개발기관인 조선콤퓨터쎈터, 평양정보쎈터 및 삼천리총회사 산하 기술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35명 안팎 규모의 이들은 몇 개월 동안 중국에서 전자통신 분야 연수를 마친 뒤 기업과 기관을 참관할 목적으로 베이징에 왔다. 여성도 3명이 포함된 이번 참관단은 몇 사람을 빼고 대부분 베이징 땅을 처음 밟았다.

 북측 참관단은 기업과 기관을 방문하는 일정의 중간에 남는 시간들을 활용해 명승지 관람을 하고 시장도 둘러봤다.

 북측 참관단의 ‘짝퉁’에 대한 적응력은 베이징 시내 대형 전자제품 상가들이 몰려 있는 중관촌에서 한층 강해진 듯 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도 불리는 중관촌에는 대부분 처음 와 보는 것이었지만, 이곳이 그들의 전공 분야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오후 4시 넘은 시간.

 차에서 내리기 앞서 “중관촌 전자상가에서는 ‘챠오와이’ 시장에서처럼 값을 많이 깎았다가는 면박을 당할 수 있다”는 부연 설명이 나오자, 그들은 한바탕 웃으면서도 “그래도 값을 최대한 깎을 겁니다”라고 응수했다.

 북측 일행이 들어간 곳은 중관촌 내 대형 전자제품 판매상가 중 하나인 하이룽빌딩.

 각자 흩어져서 자유롭게 구경하면서 물건을 사기로 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흩어 졌다. 일부는 1층 오른편에 있는 LG전자 제품 전시관에 들어가 쑥 한번 훑어봤다. LCD TV를 보고, 화면 크기에 놀라기도 했다.

 특히 며칠 전부터 ‘MP3 플레이어를 사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몇몇 연구원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MP3플레이어 매장을 향해 쏜살같이 갔다.

 이들은 1층에서부터 3층까지 MP3 플레이어 전문 매장을 찾아 다녔다.

 1층 한 켠에서는 북측 연구원 서너 명이 중국산 MP3 플레이어에 빠져 있었다. 귀에 꽂고 기능버튼을 계속 눌러가면서 직접 들어보기도 했다. 무슨 기능이 있냐고 점원에게 꼬치꼬치 물었다.

 “노래 들으려고 MP3 플레이어를 사려는 겁니까”라고 묻자, 그 중 한 사람이 “어학 공부하려고 합니다”고 대답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이곳에서도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MP3 플레이어를 고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점원이 몇 개 모델을 꺼내 보여주며 제품 설명을 늘어 놓았다. 중국산 제품들이었다.

 북측 연구원들은 점원의 설명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했다. 대신 직접 테스트해 봤다. 그들은 MP3 플레이어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그들이 “얼마냐”고 묻자, 점원은 190위안을 불렀다.

 그러자 곧바로 그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점원은 곧장 큰소리로 “얼마를 원하냐”고 외치며 잡으려 했지만, 북측 연구원들은 돌아보지 않고 다른 매장으로 향했다.

 “150위안 정도면 몰라도, 너무 비싸게 부릅니다. 외국인이라고 더 올려 부르는 것 같네요.”

 몇 걸음 떨어진 다른 중국산 MP3플레이어 매장에서도 북측 연구원 3명이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이들은 “조선글(한글)도 지원 되나요”라고 점원에게 묻고 확인했다.

 이들 중 두 사람은 여러 기능을 확인한 뒤, 각자 150위안 가량을 주고 하나씩 샀다. 원하는 것을 사서 만족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베이징 중관촌내 전자제품 상가에서 MP3플레이어를 보고 있는 북측 연구원.

 

 



 베이징 중관촌내 전자제품 상가에서 MP3플레이어를 보고 있는 북측 연구원들.

 


 


 베이징 중관촌내 전자제품 상가에서 MP3플레이어를 고르고 있는 북측 연구원들.

 

 


 베이징 중관촌내 전자제품 상가에서 MP3플레이어를 고르고 있는 북측 연구원들.

 


 전날부터 “(휴대형) USB 메모리 카드를 어디 가면 살 수 있냐”고 연신 물어보던 사람들도 제품을 고르고 있는 게 보였다.

 북측 연구원들은 건물 1층에서 국내외 유명 상표가 붙은 컴퓨터들을 비롯해, 위층에 있는 디지털카메라, 컴퓨터 주변기기 등도 천천히 구경하고 건물을 빠져 나왔다.

 “여기 중관촌 전자상가에도 짝퉁 전자제품이 어느 정도 있는 지 모르지만, 둘러보는 동안 정품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제품들이 보였다”고 한 북측 연구원이 소감을 말했다.

 이 연구원의 느낌은 안타깝게도 나중에 적중했다.

 북측 연구원이 구매한 MP3플레이어가 점원의 설명과 달리 ‘조선글’을 포함해 한 두 가지 기능의 지원이 안됐던 것.

 이 연구원은 “숙소에 돌아와서 MP3 제품을 써 봤는데, (점원 말과 다르게) 조선글이 안 나온다”면서 씁쓸해 했다.

 

 

 북측 참관단은 다음 날 오후 베이징 시내 북서쪽에 있는 대형 도매시장 ‘진우싱’에도 잠시 들렀다. 넓은 면적의 실내 도매시장에는 의류, 가방, 신발, 전자제품, 생필품, 학용품 등 품목이 많았다.

 며칠 동안 목을 빼고 전자키보드를 찾고 다니던 30대 후반의 연구원은 이곳에서 마침내 악기 판매점을 발견하고는 무척 반가워 했다. 중관촌 전자제품 상가와 챠오와이백화점을 샅샅이 뒤져도 전자키보드를 찾지 못했던 터였다.

 “두 딸에게 선물로 주려고 합니다. 집에서 연습하면서 익히라고요.”

 차분한 성격의 그는 북측 참관단 중 ‘피아니스트’라고 불릴 만큼 피아노 반주 솜씨가 좋은 여성 연구원에게 성능 점검을 부탁했다. 그들은 3개 모델의 제품을 놓고서 건반과 수십 개의 기능키 들을 하나하나 눌러 가면서 꼼꼼히 점검을 했다.

 “일단 평양에 돌아 간 뒤 제품의 문제를 발견해도, 그때는 바꾸기가 힘들기 때문에 더 세세하게 봤습니다.”

 옆에서 한 연구원이 주인 아저씨에게 “이거 정품 맞습니까”라고 묻자, 주인은 즉시 “당연히 정품이죠. 여기 상표 보세요”라고 응수했다.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었다.

 그들은 20분 정도 살펴본 뒤, 성능이 가장 좋은 모델을 골랐다.

 주인은 처음에 500 위안을 불렀다.

 그러자 북측 연구원은 “너무 비쌉니다. 좀 깎아주세요”라고 요구했다.

 한참 흥정을 한 뒤 결국 350위안 선에서 합의를 봤다. 북측 연구원은 지갑에 있는 돈을 털어도 모자라자, 옆 사람에게 빌려서 350위안을 채워 주인에게 건넸다.

 나중에 집합 장소에 모였을 때, 단연 큼지막하게 포장된 전자키보드에 참관단 일행의 시선이 쏠렸다. 그는 딸들에게 줄 선물을 어렵게 구해서인지 몇 번이고 전자키보드를 만져보면서 말없이 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30대 후반의 연구원은 큼지막한 장난감 같은 것을 들고 나타났다.

 “4살짜리 아이에게 줄 보행기를 하나 샀습니다.”

 그는 150위안 정도에 구매했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도 “그 가격이면, 잘 산 것 같다”며 부러워했다.

 구두 가방을 들고 오는 사람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부모, 장인, 장모께 드리거나 친척들에게 선물로 줄 것이라고 했다.

 평양에 돌아갈 날을 앞두고, 모두 자신 것 보다는 가족에게 줄 선물을 더 챙기는 모습이었다. 이를 위해 이들은 며칠 동안 더위 속에 단돈 1위안 짜리 아이스크림도 사먹지 않고 돈을 아끼기도 했다.

 



 베이징의 '진우싱' 시장에서 구두를 고르는 북측 연구원들

 

 

  앞서 북측 참관단은 베이징 최대의 번화가로 불리는 ‘왕푸징’도 둘러봤다.

 왕푸징 대로와 먹거리 골목을 구경한 이들은 신동안백화점 건너편의 한 옷 가게로 갔다. 할인행사의 기회를 잡기 위한 것. 이들은 여기에서 맘에 드는 색상의 T셔츠를 저렴한 가격에 골랐다. 옷 가게 주인은 갑자기 몰려든 많은 손님들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베이징 왕푸징 거리에 있는 한 의류판매점에 들러 옷을 보고 있는 북측 연구원들.




 

   한편 이들이 베이징을 둘러보는 동안 신선한 풍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다름 아닌 북측 참관단과 남측 관광객들과의 우연한 만남.

 양쪽 모두 여행사를 이용하다 보니, 둘러보는 관광지도 거의 똑같을 수 밖에 없었다.

 남녘과 북녘 땅이 아닌 중국 베이징에서의 만남이었지만, 양쪽 모두 만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북측 참관단이 천안문 광장을 둘러보고 걸음을 옮긴 자금성에는 남측 관광객들이 많았다. 북측 참관단들도 상의를 똑 같은 색으로 갖춰 입은 터라 남측 관광객들의 눈에 쉽게 띄었다.

 자금성에서 오문과 태화문을 지난 뒤부터 북측 참관단과 남측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사중인 태화전 옆을 걸어 지나갔다.

 남측의 관광객들은 “이렇게 외국 나와서 북한 사람들 만나니 반갑기도 하다”고 하면서 북측 일행에 관심을 보였다.

 



 자금성내에서 공사중인 태화전 옆을 함께 지나가고 있는 남측 관광객(왼쪽)과 북측 참관단(오른쪽).



  중화전에 들어선 뒤, 관광가이드의 설명을 듣지 않고 북측 일행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남측 관광객들도 눈에 보였다. 남측의 한 젊은 관광객은 북측 일행을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으려고도 했다.

 천단공원에 갔을 때는 남측 관광객이 북측 일행을 보고 "반갑습니다"라며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북측 연구원도 반갑게 화답했다.

 남측의 한 관광객은 "이런 것을 보면서 최근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옛날과 크게 달라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양쪽의 만남은 식사자리에서도 이어졌다.

 천단공원, 야윈춘 중화민족원, 이화원, 우다오커우, 시즈먼 등의 근처에 있는 한식·중식 식당에서 양쪽은 옆 테이블에 가깝게 앉아서 식사를 했다. 더욱이 식당에 중국인이나 외국관광객들 없이 남측과 북측 사람들만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할 때가 많아 색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 이 글은 미디어다음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