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최태원 SK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이달 1일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에서 창밖을 보며 환담하고 있다.  /사진 제공=SK
(왼쪽부터) 최태원 SK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이달 1일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에서 창밖을 보며 환담하고 있다.  /사진 제공=SK

 

'인공지능(AI)은 SK의 미래'라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언이 구체적인 결실을 냈다. SK가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협력해 미국이 추진하는 5000억달러(약 700조원) 규모의 글로벌 AI 인프라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에 참여하면서다.

단순한 기술제휴를 넘어 최 회장이 직접 설계해온 AI 중심 성장축 전환 전략에 따른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글로벌 AI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SK가 협력구조를 선제적으로 설계하며 참여 폭을 넓힌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이닉스·SKT,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 성과 창출

2일 SK에 따르면 최 회장은 1일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고성능 메모리 공급 의향서(LOI)와 서남권 AI데이터센터 협력 양해각서(MOU)를 동시에 체결했다.

이번 합의는 오픈AI가 추진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성사됐다. 이는 기술 계약을 넘어 메모리반도체에서 데이터센터까지 전 주기를 포괄하는 협력 모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파트너십의 실행주체는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SKT)이다. 이 중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공급 파트너로 참여한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월 최대 90만장(D램 웨이퍼 기준)의 HBM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생산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는 오픈AI가 요청한 물량으로 현재 전 세계 HBM 생산능력의 2배를 웃도는 규모다.

SKT는은 그간 쌓아온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서남지역에 전용 AI데이터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SKT는 서울·분당·일산 등 수도권 거점에서 대형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운영하며 클라우드와 AI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지원하며 축적해온 역량을 한층 확장하게 됐다. 서남권 AI데이터센터는 울산에서 추진 중인 SK AI데이터센터와 연계해 동서를 잇는 AI벨트를 형성하며 아시아 AI허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른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CEO 등 양사 경영진이 1일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에서 메모리 공급 의향서와 서남권 AI DC 협력에 대한 MOU를 체결했다. /사진 제공=SK
(오른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CEO 등 양사 경영진이 1일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에서 메모리 공급 의향서와 서남권 AI DC 협력에 대한 MOU를 체결했다. /사진 제공=SK

 

최 회장은 "글로벌 AI인프라 구축을 위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SK가 핵심 파트너로 참여하게 됐다"며 "메모리반도체부터 데이터센터까지 아우르는 SK의 통합 AI인프라 역량을 이번 파트너십에 집중해 글로벌 AI인프라 혁신과 대한민국의 국가 AI 경쟁력 강화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오픈AI에서 엔비디아까지…AI 연대 넓혔다

이번 파트너십이 성사된 배경에는 최 회장의 리더십과 외교적 행보가 자리한다. 그는 지난 몇년간 AI를 그룹의 미래 성장축으로 규정하며 'AI올인' 전략을 주도해왔다. 단순한 SK 총수 차원의 지원자가 아니라 글로벌 AI 패권 구도에서 협력의 실행자로 자리매김해온 것이다.

가장 굵직한 접점은 오픈AI다. 최 회장은 올트먼 CEO와 2023년부터 긴밀히 소통하며 AI인프라 구상을 공유해왔다. 올해 2월 올트먼 CEO가 방한했을 당시 서울 비공개 회동에서 스타게이트 참여 방안을 논의했고, 이번 만남은 그로부터 약 8개월 만의 재회였다. 올트먼 CEO는 회동 직후 "정말 훌륭했다(It was great. Wonderful!)"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오른쪽부터) 최태원 SK 회장이 올 8월 미국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만났다. /사진=최태원 회장 개인 인스타그램
(오른쪽부터) 최태원 SK 회장이 올 8월 미국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만났다. /사진=최태원 회장 개인 인스타그램

 

또 다른 축은 엔비디아와의 협력이다. SK하이닉스의 HBM은 이미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다. 최 회장이 증설과 기술고도화를 직접 챙기며 신뢰를 다져온 결과다. 이는 SK하이닉스를 HBM 글로벌 표준 공급자로 끌어올린 기반이 됐다.

엔비디아 창업주인 젠슨 황 CEO와의 접점도 넓혀왔다. 올 8월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도 최 회장은 황 CEO와 만나 HBM 공급 확대와 호환성 협력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6세대 HBM(HBM4) 개발을 공식화하면서 양사 간 논의가 실질적 성과로 연결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SK하이닉스의 6세대 HBM는 내년 출시될 엔비디아의 AI가속기 '루빈'에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황 CEO는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막에 앞서 최 회장과 서울 인근에서 별도 회동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이 AI를 그룹의 핵심 어젠다로 삼은 것은 2019년부터다. 이후 그는 'AI 체화'를 강조하며 전략적 일관성을 유지해왔다. 올 8월 이천포럼 마무리 세션에서도 "AI를 가지고 놀며 혁신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를 도구가 아닌 그룹의 핵심 전략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재차 확인한 발언이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이 주도해온 AI 중심 성장축 전환 전략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면서 한국 기업이 세계 AI 경쟁구도에서 입지를 넓힐 발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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