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SDI가 전기차 시장 둔화와 미주향 관세 부담 등 복합 악재 속에서도 재무 체질을 지켜냈다. 3분기 6000억원대 영업적자를 기록했지만 현금흐름을 안정적으로 방어하며 내실형 성장 기조를 유지했다.
삼성SDI는 이번 부진을 일시적 조정 국면으로 진단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와 데이터센터용 배터리로 성장축을 재편하는 중장기 체질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차 둔화·관세 압박 '6000억대 적자'
삼성SDI는 올 3분기 연결기준 매출 3조518억원, 영업손실 5913억원을 기록했다고 28일 공시했다. 영업이익률은 –19.4%로 집계됐다. 주력 사업인 배터리 부문에서는 매출 2조8200억원, 영업손실 6301억원을 기록하며 손실 폭이 확대됐다.
이번 부진은 △전기차(EV) 수요 둔화 △미국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축소 △소형전지 회복 지연 △미주향 에너지저장장치(ESS) 관세 부담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김종성 경영지원실장(부사장)은 "지속되는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전기차 배터리 수요 감소"라며 "소비자 수요가 볼륨·엔트리 세그먼트로 이동했고 미국 진출이 상대적으로 늦은 상황에서 합작법인(JV) 파트너사의 수요도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ESS 부문도 미국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지만 관세 부담으로 수익성이 기대만큼 개선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삼성SDI는 이번 부진을 체질 재정비의 조정 국면으로 진단했다. 생산 효율과 원가 구조를 정밀하게 손질해 중장기 경쟁력을 높이는 내실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SDI의 재무지표는 안정적이다. 3분기 말 기준 총자산은 42조1745억원으로 직전 분기보다 7376억원 증가했다. 적자에도 자산이 늘어난 것은 편광필름 사업 매각으로 확보한 1조1000억원대 현금이 4991억원데 설비투자(CAPEX) 집행과 맞물리며 유동성 방어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영업 부진 속에서도 비영업적 현금 유입과 투자 효율화가 균형을 이뤘다는 분석이다.
부채 관리 역시 안정적이다. 3분기 말 총차입금은 11조4414억 원으로 전 분기 대비 0.2% 증가에 그쳤고, 총부채는 오히려 566억 원 감소했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은 79.7%로 사실상 변동이 없었다. 공격적 투자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차입을 최소화해 재무 효율성을 지켜낸 점이 눈에 띈다.
현금흐름 방어력도 견조하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조1486억원으로 직전 분기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다.
삼성SDI는 현금흐름 중심의 경영 원칙을 재차 강조했다. 김종성 부사장은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 시점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신규 증설보다는 기존 라인 전환을 우선해 투자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자금 효율을 중시하는 전략 기조를 분명히 했다.
이어 "추가적인 유상증자는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으며 "향후 자금이 필요할 경우 시기나 규모를 고려해 차입과 보유 자산 활용을 병행해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불확실한 시장 환경 속에서도 자본시장 의존도를 최소화하고 내부 현금흐름으로 버티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EV 편중 탈피 나선 삼성SDI
삼성SDI의 중장기 전략 초점은 '성장축 재배치다. EV 배터리에 집중된 현재 수익 구조를 ESS와 데이터센터용 전지 등 신수요 영역으로 확장해 시장 리스크를 완화하고 안정적인 수익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삼성SDI는 ESS를 중심으로 한 구조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 '스타플러스에너지(SPE)'를 축으로 북미 현지화 전략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미국 인디애나주 공장에서는 이미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기반 ESS 전용 라인이 가동 중이며 내년 4분기에는 LFP(리튬인산철) 라인 전환이 시작된다. 삼성SDI는 이를 통해 2026년 말까지 미국 내 ESS 배터리 생산능력을 연간 30GWh 규모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ESS 시장에서 삼성SDI의 강점은 비(非) 중국계 기업 중 유일하게 각형 배터리를 대규모로 생산·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용휘 ESS 비즈니스팀장(부사장)은 "현재 미국 내 ESS 배터리 수요 중 현지 생산으로 충족 가능한 비율은 약 30%에 불과하다"며 "중국산 배터리 규제 강화와 각형 제품 선호 확산 속에서 비중국계 기업 중 각형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로서 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V 배터리 시장이 둔화되는 가운데서도 삼성SDI는 제품 포트폴리오의 양극단을 정밀하게 다듬는 투트랙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프리미엄 시장에는 하이니켈 46파이(지름 46㎜) 원통형·각형 배터리를, 보급형 시장에는 LFP·미드니켈 제품을 투입해 고급화와 대중화를 병행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 중이다.
박종선 배터리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은 "2028년 양산을 목표로 LFP·미드니켈 각형 배터리를 개발 중"이라며 "소재 개발, 공정 효율화, 급속 충전 성능 강화라는 세 축을 동시에 추진해 차별화된 LFP 기술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삼성SDI는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를 새로운 성장 기회로 보고 있다. 데이터센터용 배터리 백업유닛(BBU)는 서버 단위의 비상 전원 공급 장치로, 올해 삼성SDI의 BBU용 셀 매출 비중은 약 11%, 시장점유율은 40% 수준(자체 추정)에 이른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가 집중되면 향후BBU 설치량은 2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박 부사장은 "BBU는 무정전 전원장치(UPS)와 용도가 달라 시장 중복 가능성이 낮다"며 "각 시장 수요에 맞춘 제품으로 고성장 수요에 대응하겠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