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배송 규제를 둘러싼 노조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쟁점은 물류 산업 전반의 노동환경과 제도적 기준으로 확장되고 있다. 빠르게 증가한 새벽배송 수요에 따라 야간 노동에 투입되는 특수고용직노동자도 급증했지만 이를 보호할 법적 정의와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부재한 실정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제도 공백이 현장 갈등을 구조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지난달 30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초심야 시간대(0~5시) 배송을 제한하고 오전 근무조(5시 출근)가 긴급 배송 물품을 처리하자는 방안을 제안했다. 초심야 노동이 과로사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에서 노동자의 수면권과 건강권을 최소한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택배노조는 특히 쿠팡의 배송 시스템을 겨냥하며 개선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국제암연구소(IARC)가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국제 기준상 야간근무는 연속 2~3일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권고를 근거로 제시하며 쿠팡을 압박하고 있다.
반면 쿠팡파트너스연합회는 '새벽배송 제한 규제는 곧 생계 위협'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새벽 근무가 주간 대비 높은 수입과 비교적 나은 근무 여건을 보장하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자리라는 설명이다. 또 민주노총 탈퇴 이후 해당 논의가 제기된 시점을 들어 이번 제한 조치가 정치적 보복이라는 시각도 있다며 갈등 수위를 높이고 있다.
새벽배송을 둘러싼 논의는 노동 현장을 넘어 서비스 유지 여부에 대한 사회적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소비자단체, 소상공인연합회, 온라인쇼핑협회 등 10여 개 단체는 새벽배송이 이미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은 핵심 서비스인 만큼, 중단될 경우 소비자의 불편은 물론 소상공인과 농어업인의 판로 차질, 산업 일자리 축소 등의 우려가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야간근로를 둘러싼 택배노조와 쿠팡노조 간의 대립이 단순한 이해관계 충돌을 넘어 법·제도 미비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택배 및 물류 현장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특고 노동자에 대한 건강권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이 현장 갈등을 심화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56조는 야간근로(오후 10시~오전 6시)에 대해 통상임금의 50%를 추가 지급하는 가산수당만을 규정하고 있다. 연속 휴식 의무나 근무시간 상한 등에 대한 조항은 멸확히 명확히 마련돼 있지 않다.
야간근로와 건강권과 관련된 현안은 국회가 수년째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과제로 꼽힌다. 2018년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이후, 과로사 방지를 목표로 한 노동시간 규제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특수고용직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2021년 이후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확대가 일부 추진되기는 했다. 그러나 초심야 노동의 장시간화를 제한하거나 건강권을 보장하는 핵심 조항들은 이해관계자의 첨예한 대립 속에 계류 및 폐기되며 제도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물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새벽배송을 전면적으로 중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야간근로와 관련된 명확한 법적 정의가 없다 보니 현장에서 근무 조건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이러한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노사 간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만큼 명확한 기준 마련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과 달리 주요 국가들은 야간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기준을 명확히 두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자정부터 오전 5시 사이 3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 ‘야간노동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 이하로 엄격히 제한한다. 또한 ‘11시간 연속 휴식 의무화’ 등의 제도를 통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핀란드는 야간노동이 허용되는 시간대를 법으로 명시하고 있고, 네덜란드는 야간노동의 시간과 횟수를 제도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으로 건강권과 소비자 권익을 동시에 보장하고 있다.
불거진 새벽배송 폐지 논의는 노동시간 제도 전반의 개편과 맞물려 장기적으로 제도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장시간 노동 관행 개선을 위한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을 수립 중인데 야간노동 규제 방안도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규제 방식과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노사 간 이견이 커 최종 합의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