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이노베이션의 현금자산 규모가 올해 들어 반년 동안에만 6조원 넘게 쪼그라들며 국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00대 상장사들 중 두 번째로 큰 감소 폭을 나타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조 단위의 적자를 떠안으며 받은 충격파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설비 투자를 절반 가까이 축소하며 돈을 아끼는 가운데 그 이상을 단기 채무 상환에 투입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이다.
13일 코스피 상장사들 중 투자전업사와 펀드를 제외하고 지난달 말 시총 상위 100개사의 분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SK이노베이션의 올해 상반기 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1조6934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6.3%(4조1717억원) 줄며 조사 대상 기업들 중 감소액 2위를 기록했다.
이는 기업이 품고 있는 자산 중에서도 가장 현금으로 유동화하기 쉽고, 그래서 가치가 변할 위험이 거의 없는 자산이다. 현금을 비롯해 취득일로부터 만기가 3개월 이내인 금융상품에 들어 있는 자금 등이 포함된다. 당좌‧보통예금처럼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통장에 넣어둔 돈이 대표적이다.
SK이노베이션의 현금자산 위축은 부진한 실적의 영향이 크다. 반년 만에 1조원이 넘는 적자를 입다 보니 유동성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상반기 1조157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 7373억원의 순손실에 이어 적자를 지속했다. 영업이익 역시 4622억원 손실로 같은 기간 대비 적자 전환했다.
이로써 SK이노베이션은 두 해 연속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연간 2조3000억원대의 순손실이 불거졌던 걸 감안하면, 2년 동안 3조원이 훌쩍 넘는 적자를 입게 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2조3725억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로 돌아섰다.
표면적인 성적뿐 아니라 본 사업의 현금 창출력에서도 SK이노베이션의 어려운 현실을 엿볼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올해 상반기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플러스(+) 5531억원으로 1년 새 71.3%나 줄었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이름 그대로 기업의 본업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보여준다.
이처럼 캐시 플로우가 나빠진 데 대한 SK이노베이션의 대응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은 시설 투자의 감축이다. SK이노베이션의 올해 상반기 자본적 지출(CAPEX)은 2조909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9.1% 급감했다. 2023년과 지난해 CAPEX가 각각 11조2381억원과 10조279억원으로 여간 10조원을 웃돌던 걸 고려하면 대폭 감소한 금액이다. CAPEX는 미래의 이윤과 가치 창출을 위한 유형자산 취득에 쓴 비용이다.
이는 단순히 현금 이탈을 막겠다는 차원을 넘어 석유화학 업계 전반의 사정에 따른 선택이기도 하다. 지금은 생산량을 줄여서라도 출혈 경쟁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석화 산업이 최근 극도의 불황에 빠지게 된 핵심 요인은 중국산 제품의 공급 과잉이다. 이에 맞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한 수준의 박리다매에 내몰렸다는 얘기다. 중국은 2010년대 후반부터 기초화학 제품 공장을 대규모로 증설해 왔다. 그리고 2020년 이후 공급량이 크게 늘며 기초화학 제품의 자급자족에 성공했다.
그 대신 SK이노베이션은 만기가 짧은 빚을 최대한 줄이며 재무 리스크 완화에 주력했다. SK이노베이션의 재무활동 현금흐름을 보면 올해 들어 반년 동안에만 단기차입금은 3조4144억원 순감소했다. 전년 동기에 5268억원 순증을 나타냈던 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뒤바뀐 흐름이다. 아울러 계열사의 유상감자 영향으로 2조4275억원의 유출이 일어난 것도 현금자산이 줄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석화 산업의 침체 속 대표 기업인 SK이노베이션의 적자가 금액적으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며 "불황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당분간은 유동성 관리 측면에서 보수적인 자산 운용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