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국제약이 약물전달시스템(DDS) 기반 생산라인 확충과 함께 연구개발(R&D)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장기지속형 비만치료제를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삼아 개발과 생산, 수출 체계를 새로 짜려는 구상이다. 기존 제네릭, 화장품 중심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신약·플랫폼 기반 회사로의 전환을 노리는 모습이다.
에스테틱서 비만신약으로 '영역 확장'
개량신약과 제네릭 위주 개발 전략을 이어온 동국제약이 장기지속형 비만치료제 개발에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3분기 처음 비만치료제 'DKF-MB501'의 제제 연구를 시작한 뒤 1년 째 비임상시험을 이어가고 있다. 한 번의 투약으로도 3개월 이상 효과가 지속되는 '장기지속형' 제형으로 기존 비만치료제보다 복용 편의성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동국제약의 비만약 시장 진출은 기존 사업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동국제약은 지난 수년간 의약품보다 '센텔리안24' 등 화장품 사업에서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였다. 실제로 회사의 지난해 화장품·헬스케어 매출 비중은 32.6%로 의약품 부문을 넘어섰다. 비만 치료제는 의약품과 헬스케어, 에스테틱을 모두 포괄하는 영역인 만큼 동국제약 입장에서는 기존 포트폴리오를 의약품 부문으로 확장 전략이 될 수 있다.
DKF-MB501 개발에서 동국제약이 내세우는 핵심 기술은 DDS다. 회사는 자체 개발한 생분해성 미립구(마이크로스피어) 기반 서방형 플랫폼 'DK-LADS'을 적용해 약물 방출 속도를 수주에서 최대 수개월까지 조절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동국제약은 이미 2011년 전 세계 처음으로 전립선암 및 유방암 치료제 약효를 2개월간 지속시켜주는 서방형 제제기술 특허를 취득한 바 있다. 이후 다케다의 루프린 제네릭인 '로렐린데포'를 상용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동국제약은 R&D 확장 전략에 맞춰 생산 인프라 투자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동국제약은 최근 충북 진천공장 내에 DDS 전용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이 시설은 마이크로스피어와 리포좀 기술을 적용한 첨단 무균 주사제 라인으로 연면적 9240㎡ 규모에 약 600억원이 투입되며 2027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한다. 올 6월에는 530억원을 들여 주사제 전용 GMP 신공장을 착공해 장기지속형 주사제 생산 역량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동국제약은 두 생산시설이 향후 DKF-MB501을 포함한 플랫폼 기반 파이프라인의 핵심 제조 허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O·수출 전방위 모색, 2027년 성과 가시화
신설 DDS 공장의 첫 가동 시점인 2027년 전후로 DKF-MB501의 개발 성과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현재는 비임상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동국제약은 향후 임상 1상에 착수해 초기 안전성 데이터를 확보한 뒤 제품화·사업화 로드맵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임상 성과에 따라 기술이전(L/O)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협상 단계에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DKF-MB501 임상 결과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췄다고 판단될 경우 L/O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직접 상업화 후 수출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동국제약은 이미 로렐린데포를 EU·일본 등 50여 개국에 공급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확보한 상태다. 여기에 이번 공장 증설 역시 DKF-MB501와 로렐린데포의 해외 공급량 확대를 목적에 둔 조치라는 설명이다.
동국제약 관계자는 "새 생산시설 가동 시점인 2027년 쯤엔 DKF-MB501 성과가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향후 임상 성과에 따라 글로벌 출시를 목표로 직접 상업화를 하거나 L/O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파이프라인 효율화, 비만에 '선택과 집중'
동국제약은 최근 몇 년간 여러 파이프라인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면서 R&D 전략을 지속적으로 조정해왔다. 올해만 해도 필러 파이프라인 'DKB-119'와 'DKM-410'을 연이어 개발 중단했고, 지난 2023년엔 2012년부터 개발을 이어온 치매치료제 'DKF-310' 등을 연구 목록에서 제외했다. 회사가 매년 R&D 비용을 매출 대비 4~5% 수준에서 집행해온 점을 감안하면 제한된 자원을 핵심 파이프라인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번 비만치료제는 과거 중단된 파이프라인과는 개발 난이도 자체가 다르다는 평가다. DKF-MB501은 DDS 플랫폼을 활용한 개량신약으로 오랜 기간 축적해온 미립구 제형 기술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여기에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기전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상업화 성공 확률이 비교적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다.
동국제약 관계자는 "치매치료제는 연구가 생각보다 까다로운 부분이 있었다. 도네페질 단일제로 개발하려던 파이프라인이었지만 메만틴제제 복합제로 개발하려 한다"며 "필러의 경우 급변하는 에스테틱 시장에 적합하지 않아 개발 중단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