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객관적 기준을 세분화하고 명확한 평가체계를 바탕으로 인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겠다."
농협중앙회가 창립 이후 처음으로 임원급 고위직 선임 시 외부 전문기관의 헤드헌팅을 도입하는 것으로 파악된 가운데, 농협의 한 고위관계자는 24일 이같이 전했다. 특히 농협 30여개 계열사의 모든 임원 100여명이 대상이며, 이 중 절반 이상이 12월 정기인사에서 교체될 것으로 전해졌다.
강호동 중앙회장의 금품수수 의혹, 국정감사에서 집중포화를 받았던 '낙하산 인사' 논란과 잇따른 금융사고 등으로 위기에 직면한 농협이 신뢰 회복을 위해 대대적인 자체 쇄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말 고위직 인사 선출에서 전문 헤드헌팅을 활용한 후보자 관리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인사 혁신안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퇴직자 재취업 제한'이다. 그동안 농협은 퇴직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난 인사가 회장의 당선을 돕고 이의 보은으로 계열사 임원에 복귀하는 '회전문 인사'가 관행처럼 굳어져 있었다.
중앙회는 이번 지침에서 퇴직 이후 경력이 단절된 자의 재취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내부 승진자를 우대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돼 외부 전문가 영입이 필수적인 경우에만 예외를 둘 방침이다.
이와 함께 인사청탁과 선거비리에 대한 제재 수위를 대폭 높인다. 공식적인 인사상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외부 인사나 타법인 임직원을 통해 청탁할 경우 보임 해제 및 승진 배제 등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 반복적·상습적 청탁이나 금품·향응 제공 등의 사실이 확인되면 징계 및 형사고발까지 불사할 계획이다.
농협이 보수적인 조직문화에서 벗어나 헤드헌팅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최근 농협을 둘러싼 전방위적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강 회장을 비롯한 농협 지도부는 '보은 인사'와 '낙하산 채용' 논란으로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농협 임원인사는 내부 추천 위주의 구조였다. 회장의 의중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전문성보다는 회장과의 친분이나 선거 기여도에 따른 논공행상이 적용되는 체계인 셈이다.
이에 강 회장 선거캠프 출신 인사들이 전문성과 무관하게 중앙회 부회장, 상호금융 대표, 주요 계열사 임원에 올랐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다. 앞서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앙회 상무급 임원 22명 중 18명이 강 회장 캠프 출신"이라며 농협이 회장의 사유물이 됐다고 비판했다.
현재 농협 내부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제도 도입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회장의 의중을 거스르는 인사 추천이 가능하겠냐는 의구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제도의 성공 여부는 12월 인사가 나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중앙회가 능력 위주의 인재를 등용하는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일지, 외부 업체를 앞세운 '세련된 내 사람 심기'에 그칠지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