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가 탄생하기 훨씬 전부터 블로터가 되어 살았다. 프리랜서 기자는 기자들의 보조쯤으로 치부하는 척박한 이 땅에서 홀로 뛰는 기자로 블로거로 그렇게 살고 있다. 8년이다. 월급 받고, 휴가 있고, 보이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직장 있는 기자’로서의 울타리를 벗어난 지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책 속에서 보던, 남들이 얘기하던 불혹의 나이가 코앞이다. 월급 없고, 휴가 없고, 든든한 울타리도 없는 불혹. 속 모르는 사람은 세상 편하게 사는 한량이라고 한다. 속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한숨이다. 삶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쪽을 보고, 어느 쪽에 설 것인지는 스스로의 몫이다.


사람들은 저쪽을 말하지만, 나는 이쪽에 서있다. 저쪽도 이쪽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에 있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라보는 자리가 달라진다고 해서 기자로서의 마음가짐과 가야할 길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쪽에도 희망과 미래는 있다.


블로터는 이미 오래전 내가 보았던 희망과 미래의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다. 블로터의 존재 자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이미 기자였고, 편집장이었고, 발행인이었다. 혼자 만드는 웹진을 꿈꾸며 시작했던 블로그 줌인라이프(www.zoominlife.com)에서 블로그가 만들어줄 또 하나의 세상을 미리 보고 있다.


어쩌면 한 때의 꿈으로, 과거의 추억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허무하지는 않을 듯 하다. 기자와 블로거로 살아가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는 까닭이다. 블로그와 담을 쌓고 있는, 블로깅의 맛을 모르는 그들. 그들이 모르는 세상, 그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들에 대해 발견한 것들이 적지 않은 것도 재산이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꿈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하나의 꿈이 꿈으로 끝난다 해도, 수많은 꿈들은 지금도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 PC도 듀얼 프로세서가 기본이 되는 마당에 하나의 꿈을 담고 살아가는 것은 시대정신에 어울리지 않는다.



블로그, 블로거, 블로깅하는 기자는 그렇게 나름대로 정의한 시대정신에 충실하고자 시작됐다. 2년 하고도 7개월 전이다. 동료 기자이자, 이웃 블로그이며, 친구 같은 후배인 이정환군의 조언 덕분이다. 블로그 세계에 발을 담고 있다면 그의 블로그 이정환닷컴(www.leejeonghwan.com)을 알겠지만, 혹시라도 모른다면 이 기회에 발길을 돌려보는 것도 좋다.


우리는 틈날 때 마다 늘 블로그의 현재와 미래를 얘기했다. 혼자 뛰는 기자, 프리랜서 기자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블로그,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블로그와의 이상적인 만남의 밑그림도 적지 않게 그렸었다. 물론 지금도 그 이야기와 밑그림은 살이 붙고, 가지를 치며 계속 성장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블로터닷넷의 소문이 들려왔다. 이미 블로터가 되어 있는 후배에게서 전화도 걸려왔다. 그렇게 만났고, 만났으니 긴 생각의 보따리를 풀었다. 생각의 시작과 종착지는 같았다. 그러나 첫 걸음을 떼는 방법, 가야할 길은 달랐다.


누가 옳은지도 알 수 없고, 누가 틀렸는지 장담할 수 없는 길이다. 시작과 끝이 같으니 그들이 가고 싶어 하는 길에 나의 생각을 조금씩 녹여 보기로 했다. 나도 그들이 되기로 했고, 그 순간 블로터닷넷의 기자와 블로거가 됐다. 명함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가운데에 올라서 또 다른 곳에 줌인라이프 둥지를 틀었다.


아무 것도 없는 또 하나의 빈집을 갖게 되는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누구를 위해, 어떻게, 무엇을 채우고 들여놓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밤낮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들이 본부라고 말하는 데스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도 아직은 완료형이 아니다.


그래도 시작은 해야한다. 언제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은 어떤 기자들에게는 속담이 아니라, 바이블이다. 안타깝게도 그 어떤 기자에는 나도 들어간다. 욕심을 조금은 버려 보기도 했고, 생각의 순서를 바꿔 보기도 했다.


가을 햇살과 바람을 머리와 어깨에 이고 길을 걸었다. 그곳에서 싱그러움이 넘쳐나는 토란잎이 눈에 들어 왔다. 노화 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토란. 산 뒤편으로 기울어가는 저녁 햇빛에도 싱싱한 젊음의 힘이 넘쳐나는 토란잎이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10년 후 20년 후에도 싱싱한 기자, 상큼한 블로거가 되라. 독자를 위한 기자가 되고, 블로거를 위한 블로터가 되라. 줌인라이프(zoom in life), 언제나 삶을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고, 쓰고, 나눌 수 있는 눈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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