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FTA 협상에서 국내 기간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지분 보유 한도를 49%에서 51%로 늘려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여차하면 이참에 지분제한 폐지까지 요구할 태세다. 그 의도는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 터. 

자본주의 시대에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우량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두고 누가 뭐랄까. 한국돈은 되고 달러는 안 된다는 식의 발상이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한다면 딱히 대꾸할 말이 없다. 글로벌 시대에 토종기업, 외국기업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주장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런데 국내 전기통신사업법은 외국인 또는 외국정부의 지분을 모두 합해도 기업 전체 주식의 49%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른바 ‘49%룰’이다. 법 적용대상은 기간통신사업자다. 국가 기간통신망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조치다. 9월 15일 기준으로 국내 주요 기간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지분은 KT가 47.71%, ST텔레콤 46.93%, 하나로텔레콤 47.55% 등이다. 

지난 6월초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FTA 반대 원정집회(자료 :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 지난 6월초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FTA 반대 원정집회(자료 :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이는 물론 국가 기간통신망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유·무선 통신망은 국가 정보흐름의 뼈대를 이루는 인프라다. 도시든 농촌이든, 부자건 가난하건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 성격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외국 자본이 기간통신망을 접수한다면? 공공망 구축을 소홀히 하고 단기적 수익이 나는 곳에 투자를 집중할 우려가 있다. 산간벽지나 농촌에 애써 비싼 돈을 들여 통신망을 구축하거나 기지국을 세우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위급상황이나 국가 안보를 위해 인위적으로 통신망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간 기업을 마음대로 통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외국인 지분제한을 확대하거나 폐지하면 한국의 기간통신사업자들이 다양한 재원조달 창구를 마련할 수 있고 단기적으로 주가가 뛰는 효과도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맞는 얘기다. 기업 입장에선 외국 자본이든 국내 돈이든 투자를 받는다는 건 환호할 일이다. 실제로 같은 이유로 SK텔레콤이나 하나로텔레콤 등의 기간통신사업자들은 지난 2004년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진행될 때 외국인 지분제한을 철폐할 것을 정통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고집하고 있는 49%룰은 정말로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국수주의적 제도일까. 외국인 지분을 50% 미만으로 제한함으로써 국내 통신기업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

둘 다 아니다. 당장 우리쪽에 지분제한 완화(또는 철폐)를 요구하는 미국만 봐도 그렇다.

미국은 통신법 301조에 의거해 자국내 무선통신사업자에 한해 직접투자는 20%, 지주회사를 통한 간접투자도 25%로 제한하고 있다. 만약 주식의 25%를 초과할 경우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공익성 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이후에도 국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규제하도록 하는 ‘엑손 플로리오법’(Exon-Florio)을 별도로 뒀다.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면 더욱 한숨이 나온다. 캐나다는 유·무선 통신사업자 구분 없이 일괄적으로 외국인 직접투자를 20%로 제한하고, 이사진의 80%를 반드시 자국인으로 선임하도록 못박았다. 일본의 경우 자국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인 NTT도코모에 대해 정부가 의무적으로 지분을 33% 이상 보유하도록 규정했다. 현재 NTT도코모의 정부 지분은 40%가 넘는다. 프랑스 또한 정부가 프랑스텔레콤(FT)의 지분 가운데 절반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49%룰 외에 딱히 방어막이 없는 현실이다. 지난 2004년 뒤늦게 투기성 외국자본을 견제하고자 ‘공익성 심사제도’를 만들었지만, 적용대상을 KT와 SK텔레콤으로 제한한 탓에 절름발이 제도에 그치고 있다. 

49%룰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현행법이 최대 49%로 제한하고 있는 외국인 지분은 의결권이 있는 주식에 한해서다. 즉 통신사업자가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에 대해서는 49% 이상 초과 소유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예컨대 외국인 지분 비율이 40%인 국내 통신기업이 있다고 가정하면, A란 외국기업이 이 회사의 주식 20%를 사더라도 의결권만 9%로 제한될 뿐 지분 매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기업별로 소유 가능한 주식량에 제한도 없다. 49%의 지분을 한 외국기업이 몽땅 보유하고 있어도 이를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이 기업이 2%의 우군만 모은다면, 그는 해당 국내 통신사의 경영이나 정책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런데, 그나마 배수진으로 쳐놓은 49% 지분제한마저 풀라는 미국의 요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나로텔레콤 부사장을 지낸 권순엽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의 말을 들어보자. “국내 웬만한 대기업 총수도 5% 안팎의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지배하는 마당에, 49%란 엄청난 상한선을 두고 국내 기간통신사를 보호하겠다는 게 과연 설득력 있는 얘긴가. 입법취지가 경영권의 외국기업 이전을 막는 것이라면, 최소한 49% 지분제한에 더해 최대주주가 외국인이 될 수 없다는 입법은 돼야 한다.”

일부에선 “49% 지분제한을 풀더라도 사실상 국내 대형 통신사가 외국기업에 인수합병될 가능성은 적다”는 시각도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는 “공정거래법 등의 견제장치가 있기 때문에 KT나 SK텔레콤같은 빅 기업이 M&A 시장에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그런 면에서 49% 지분제한은 심리적인 상한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기간통신사의 입장은 절박하다. 정태철 SK텔레콤 상무는 “외국인 지분제한을 폐지하면 재원조달 다양화라는 장점이 있는 대신, 단기 실적에 연연하느라 중장기 전략을 짜기 힘들고 적대적 M&A 방어에 불필요한 경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며 “그나마 49%룰 외에 딱히 방어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외국인 지분제한을 폐지한다는 건 아직 시기상조”라고 반박했다. 

이 대목에서 이한영 중앙대 교수의 지적은 곱씹어볼 만 하다.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라는 미국도 외국인 직접투자를 20%로 묶어놓고 1차대전 이후로 안 바꾸고 있다. 자국의 의원들조차 지분제한을 완화하자는 건의를 두어 차례 했는데도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20%란 지분은 경영권과도 무관하다. 그럼에도 지분제한을 안 푸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공권력의 통제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49% 지분제한이란 정량적 규제를 풀고 심리적 규제로 과연 외국자본의 활동을 컨트롤할 수 있겠는가. 나는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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