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차세대 인텔 센트리노 모바일 기술(코드명 산타로사, Santa Rosa)에서 고속하향패킷접속(HSDPA) 기능을 제외한다고 외신에 떴습니다. 인텔은 지난 2006년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텔 개발자 포럼에서 유선, 무선LAN, 모바일와이맥스를 지원하면서 이와 동시에 전세계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서비스 중인 3세대 데이터 통신인 HSDPA도 지원하겠다고 밝혔었는데 이를 철회하겠다는 것이죠.


인텔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략적으로 유추는 가능합니다. 

인텔 센트리노
▲ 인텔 센트리노
인텔이 센트리노 모바일 기술을 노트북에 내장하면서 이용자들은 무선LAN을 이용할 때 별도의 무선LAN 사용이 가능한 PCMCI 카드를 구매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기업들은 무선LAN을 지원하는 노트북을 구매해 기업 내 유무선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할 수 있게 됐고, 개인 사용자들은 핫스팟의 무선LAN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무선LAN 서비스가 순식간에 퍼질 수 있었던 배경도 노트북에 무선LAN을 지원하는 칩이 아예 내장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선LAN은 현재까지 54Mbps를 지원하는 표준들이 내장돼 있는데 최근에는 802.11n이라는 새로운 표준의 발표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802.11n은 무선LAN의 속도를 100Mbps 급으로 올리는 것이 기본 내용이지만 표준을 정하면서 540Mbps까지 낼 수 있도록 마련되고 있습니다.


현재 구축된 무선LAN 인프라가 54Mbps임을 감안하면 거의 10배의 속도 향상이 가능합니다. 유선 네트워크 인프라가 10Mbps에서 100Mbps로 변환된 것과 맞먹는 변화가 무선LAN 분야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802.11n이 540Mbps를 지원하지만 실제 환경에서는 최소 200Mbps 정도의 속도가 나옵니다. 

이런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고화질(HD) 콘텐츠들을 무선LAN에서 수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관련 업계들이 전하는 이유입니다. 영화사나 방송국은 물론 가전 업체들이 HD급 콘텐츠들을 지원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가정 내 수많은 기기들을 새로운 무선LAN 표준인 802.11n이 수용하자는 것이죠. HD급 콘텐츠를 서로 전송하려면 최소한 155Mbps 이상을 지원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홈 네트워킹 환경에 훨씬 유리해집니다.


물론 기업 내부에서도 광대역의 무선LAN 인프라가 구축되면 더 많은 기업용 응용프로그램들을 무선 환경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기업들이 데스크톱 PC 구매보다 노트북 PC를 다 많이 구매합니다. 그만큼 무선 환경을 구축했을 때 유선 네트워크 인프라를 운영할 때보다 비용 대비 효율성면에서 앞서 있다는 것이고, 생산성 향상에서도 노트북을 활용할 때가 높다는 근거 때문이죠.


현재 802.11n은 표준이 마련돼 있지는 않습니다. 애초에는 지난해에 표준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2008년 4월 경 대략적인 안이 마련되고 2008년 10월 경에 표준이 확실히 마련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802.11n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선LAN 표준화 단체인 WIFI에서 오는 3월에 Pre-802.11n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Pre-802.11n은 802.11n 표준을 수용할 수 있는 사전 단계로 표준이 정해지면 펌웨어 업그레이드(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802.11n에서 표준으로 제정된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나 개인들이 802.11n 표준이 내년 하반기에나 제정된다는 소식을 듣고 기존의 54Mbps 무선LAN을 구축하지도 않고, 540Mbps도 구축하지 않으면서 시장이 침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입니다.


그렇다면 애초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죠. 인텔은 차기 센트리노 모바일 기술에 HSDPA를 제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HSDPA는 이동통신회사들이 제공하는 새로운 데이터망입니다. SK텔레콤이나 KTF가 무선모뎀을 이용해 무선 인터넷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는 바로 그 서비스인 셈이죠. 고객들은 30만원이 넘는 무선모뎀을 구매해 관련 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쓰는 만큼 돈을 내는 종량제입니다. 

우리나라 사용자나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는 노트북 사용자들이 무선모뎀을 구매해 업무에 적용하는 불편함을 노트북 구매로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었기에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이동통신사들은 기존 노트북 사용자들에게는 무선모뎀을 판매하겠지만 HSDPA를 지원하는 칩이 내장된 노트북이 많이 팔리면 굳이 무선모뎀을 개발하고 관리할 필요가 없어지는데 이런 기회가 일단 보류된 것이죠.


인텔은 고민은 바로 여기서 시작합니다. 인텔은 이동통신사들이 서비스하고 있는 HSDPA 진영보다는 이들 진영과 경쟁하는 모바일 와이맥스(국내에서는 KT와 SK텔레콤의 와이브로) 분야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모바일 와이맥스 서비스 회사들이 더 많이 늘어날 겁니다. 정작 자기네가 힘을 싣고 있는 진영에 속한 서비스가 사용자들에게 더 빨리 안착되길 바라는 것이 칩 업체의 당연한 움직임일 겁니다. 경쟁하는 HSDPA 진영의 손을 들어줄 이유는 없는 것이죠.


물론 전세계 이동통신사들이 HSDPA 서비스 가능한 인프라를 확산시킨다면 인텔의 행보에 또 다른 변화가 나올 것은 당연합니다만 일단 인텔은 무선LAN과 모바일 와이맥스 분야에 힘을 싣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특히 무선LAN의 경우 돈을 내고 주파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업이나 개인들은 무선LAN 인프라를 이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540Mbps 지원 무선LAN 표준이 나오면 이전과 또 다른 동영상 콘텐츠 유통도 가능해집니다. 이 분야에는 수많은 PC 제조 업체가 있습니다.


인텔이 칩을 발표하더라도 PC 제조업체들이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손해가 막심해집니다. 여전히 PC 진영에서는 휴대폰 판매보다는 자사의 PC와 노트북, 또 삼성전자가 힘을 싣고 있는 울트라모바일PC 같은 모바일 기기들의 판매가 우선입니다.(물론 삼성전자는 휴대폰과 PC를 모두 보유하고 있지만). 제조 업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칩을 좀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기업 사용자나 개인 사용자들이 모두 무선LAN 서비스를 즐겨하는 상황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전략을 가져가겠습니까?


이제 시작하는 이동통신사들의 3세대 데이터망 서비스를 지원하는 칩을 탑재해도 사용자가 많지 않거나 또 종량제 때문에 특정 업무에 속한 종사자들 이외에 폭발적 사용자가 늘지 않는다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관련 칩을 PC 제조사에게 탑재해달라고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가뜩이나 AMD라는 도전자 때문에 기업 시장에서 2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긴 인텔이 엄청난 위험을 감수할 상황이 아닙니다. 인텔은 실적 저하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습니다. 국내 연구개발 센터를 폐쇄한 것도 바로 구조조정의 여파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한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물론 802.11n 표준이 제정된다고 해도 급속도로 확산되기에는 시일이 걸릴 겁니다. 이미 구축한 802.11a/b/g 인프라를 지원하는 주파수 영역에 대한 상호 운용성 문제가 해결돼야 하기 때문이죠. 고속도로는 4차선으로 한정돼 있고, 이미 시속 54km를 달리는 차들이 차지했는데 새로운 신차가 시속 540km를 달린다고 해서 그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는 환경과 동일한 이유입니다. 이런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사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