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디스플레이업계에 ‘탄소 중립’은 현실적 과제입니다. 전 산업 가운데 탄소배출량 상위 7위권(2018년 전체 국가 배출량 중 1.94%·산업부 기준)으로 제품 생산 과정에서 환경을 해친다는 일차적 문제도 있습니다. 나아가 탄소 배출은 실제 손익에도 영향을 줄 뿐더러 산업 내 지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고객사에 제품을 팔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죠. 비약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현실에 가깝습니다.

▲ 삼성디스플레이에 탄소 감축은 현실적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삼성디스플레이에 탄소 감축은 현실적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관련해 삼성디스플레이가 올해 들어 보여주고 있는 ESG 행보가 눈에 띕니다. 지난 2월 글로벌 공급망 안에서의 사회적 책임을 표방하는 ‘책임감 있는 산업 연합(RBA)’에 가입했고, 3월엔 산업통상자원부가 만든 ‘반도체·디스플레이 탄소중립위원회’에 들어갔죠. 지난 6월엔 창사 후 처음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2025년까지 대기업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제출이 의무화될 예정이니 선제적 조치로 해석됩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이 같은 행보는 정부의 ‘2050 탄소 중립’에 발맞춘다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단 ‘잠재적 매출 하락 가능성’이란 현실적 우려의 발로로 보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탄소 중립을 속속 선언하는 상황에서 디스플레이 패널을 납품하는 회사가 탄소를 대량으로 뿜어낸다면, 그 자체로 제품 경쟁력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플의 ‘넷 제로’ 행보, 삼성디스플레이엔 ‘과제’

삼성디스플레이의 주력 상품은 중소형 모바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입니다. 그리고 매출의 상당수를 애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애플은 2030년까지 탄소 중립에 나설 것이라 선언했죠. 2015년까지 일으켰던 탄소 배출을 75% 줄이고, 나머지 25%는 산림·자연 생태계 복원 등 탄소 제거 솔루션으로 ‘넷 제로(Net Zero)’를 만들겠다는 게 애플의 큰 그림입니다.

▲ 애플 탄소배출 추이 및 저감계획 그래프.(출처=애플 '2020 환경보호 성과 보고서'.)
▲ 애플 탄소배출 추이 및 저감계획 그래프.(출처=애플 '2020 환경보호 성과 보고서'.)

여기서 삼성디스플레이의 과제가 드러납니다. 애플은 ‘GHG 프로토콜’(온실가스 회계처리 및 보고 기준) 상 탄소를 직접 배출하는 ‘스코프(Scope)1’과 제품 생산에 쓰는 전기에서 탄소가 배출되는 ‘스코프2’에선 이미 탄소 중립을 실현했습니다. 남은 건 물류, 협력사 등 외부 배출에 해당하는 ‘스코프3’ 뿐이죠.

스코프1이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직접적 탄소 배출이고, 스코프2가 제품 생산에 쓰이는 에너지(전력 등)을 만드는 곳(발전소 등)에서 생기는 탄소 배출이라면, 스코프3은 부품 공급자와 같은 밸류체인과 제품 사용 단계, 처분 및 운송 등에 생기는 탄소입니다. 애플이 2030년까지 ‘넷 제로’에 나선다면, 벤더들의 탄소 배출량(스코프3)을 들여다 볼 시기도 얼마 안 남은 겁니다.

▲ 삼성디스플레이 '진정한 가치' 결과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비용은 2020년 기준 2570억원에 달했다. (사진=삼성디스플레이 ‘2021 지속가능경영보고서’)
▲ 삼성디스플레이 '진정한 가치' 결과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비용은 2020년 기준 2570억원에 달했다. (사진=삼성디스플레이 ‘2021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삼성디스플레이의 탄소 관련 지표는 어떨까요. 실적에서 사회경제적 가치와 환경적 가치를 반영한 ‘진정한 가치(True Value)’ 기준으로 삼성디스플레이는 2020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에 약 2570억원의 손실을 내고 있습니다. 공정 과정에서 공장을 짓고 전력을 끌어와 가동하며 화학 물질을 많이 쓰는 만큼 손실이 발생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세부 지표를 보면 스코프1과 스코프2는 점차 줄어드는 게 보입니다. Co2e(이산화탄소 환산량) 기준 스코프1은 2018년 126만5000만 톤에서 2020년 103만2000톤으로, 2019년 380만7000톤에서 360만 톤으로 각각 20만 톤씩 줄였죠. 그 결과 매출 1억원 당 온실가스 배출량도 2018년 17.70톤에서 2020년 17.06톤으로 2년만에 약 3.62% 감소했습니다.

▲ 2018년 이후 삼성디스플레이의 스코프1과 스코프2는 매년 줄고 있다.(사진=삼성디스플레이 ‘2021 지속가능경영보고서’)
▲ 2018년 이후 삼성디스플레이의 스코프1과 스코프2는 매년 줄고 있다.(사진=삼성디스플레이 ‘2021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간접 배출인 스코프3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나와 있지 않다는 겁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에 대해 자사가 가입한 RBA의 경우 비상장사가 아닌 경우 스코프3를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비상장사 가운데서도 스코프3을 공개하는 기업이 있는 걸 감안하면 다소 아쉽습니다.

실제로 삼성디스플레이가 가입한 RBA의 ‘프랙티컬 가이드’에는 기업의 ESG 관련 활동을 ‘Good’과 ‘Better’, ‘Best’로 나눕니다. 그리고 환경 보고 지표에서 스코프3은 ‘Better’에 해당합니다. 지난 3월 참여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탄소중립위원회에서도 국제적인 ‘사회적 탄소 감축’이 강조됐는데, 이는 곧 기업들에게 스코프3에 해당하는 간접적 탄소배출에도 신경을 쓰라는 의미입니다.

▲ 삼성디스플레이가 가입한 RBA의 'PRACTICAL GUIDE'에선 스코프3 공개를 'Better'로 분류하고 있다.(사진=RBA PRACTICAL GUIDE 갈무리)
▲ 삼성디스플레이가 가입한 RBA의 'PRACTICAL GUIDE'에선 스코프3 공개를 'Better'로 분류하고 있다.(사진=RBA PRACTICAL GUIDE 갈무리)

비상장사에게 의무는 아니더라도, 삼성디스플레이 정도 되는 글로벌 최상위권 디스플레이 기업이라면 스코프3은 ESG 투명성 차원에서 공개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 측도 이를 의식한 듯 “스코프3를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中OLED 공세, 삼성디스플레이에겐 어떤 대안 있나

다시 애플로 돌아와 봅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애플이 지난해 출시한 아이폰12 OLED의 75%를 공급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또 차기작 아이패드에도 OLED 패널을 넣을 거란 설이 나오고 있죠. OLED의 문제점(번인, 수명)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고 또 전력을 덜 소모하며 유연하기도 한 만큼 OLED를 쓰는 전자기기 사용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 애플은 아이폰11부터 OLED 디스플레이 탑재를 늘리고 있다.(사진=애플 홈페이지 갈무리)
▲ 애플은 아이폰11부터 OLED 디스플레이 탑재를 늘리고 있다.(사진=애플 홈페이지 갈무리)

이는 글로벌 중소형 OLED 1위인 삼성디스플레이에게 수혜겠지만, 중장기적으론 두 가지 잠재적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애플의 탄소 감축 행보가 있고요. 또 중국 중소형 OLED 업체들이 시장 점유율을 야금야금 먹고 있죠. 중국 후발 주자들이 가격 경쟁력으로 치고 올라오는 가운데 삼성디스플레이가 탄소 감축에 속도를 내지 못한다면, 애플이란 중요한 고객사를 잃게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삼성디스플레이는 탄소 감축에서 분명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스코프1의 경우 내부적으로 줄일 수 있는 여지가 크지만, 스코프2는 현실적으로 빨리 줄이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코프2의 경우 전기를 효율적으로 쓰는 것도 관건이지만 애초에 친환경 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줄이기 어렵습니다. 기업 자체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국가적 지원도 요구되죠.

▲ 한국의 그리드 패러티 시점은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 크게 뒤쳐진다.(사진=딜로이트 안진 ‘한국기업들의 탈탄소 전환의 도전과 과제’)
▲ 한국의 그리드 패러티 시점은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 크게 뒤쳐진다.(사진=딜로이트 안진 ‘한국기업들의 탈탄소 전환의 도전과 과제’)

이런 면에서 오히려 중국이 더 우위에 있습니다. 화력발전이 신재생에너지와 생산 단가가 같아지는 ‘그리드 패러티’(Grid Parity)를 중국은 이미 달성한 상태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그리드 패러티 시점은 2030년으로 예상되죠. 더군다나 원자력을 잠재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는 우리나라로선 에너지의 경제적 관점에서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국내에 세 곳의 생산거점(아산1, 2·천안)을 두고 있는 만큼 스코프2를 줄이긴 쉽지 않을 겁니다. 저렴한 화력발전 대신 비싼 신재생에너지를 주고 사야 하며, 이로 인한 비용은 고객사, 나아가 소비자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또 2023년경 세계적으로 도입될 ‘탄소국경세’를 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할 스코프2 비용은 장기적으로 삼성디스플레이 제품 가격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겁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중국 BOE는 애플에 OLED를 공급하기 위해 수차례 노크했습니다. 아이폰12와 차기작에는 OLED를 공급하지 못했지만, 향후 삼성디스플레이보다 저렴한 OLED를 괜찮은 기술력에 내놓는다면 언제든 그 자리를 빼앗을 가능성이 있죠. 이런 관점에서 삼성디스플레이의 스코프2로 인해 발생할 비용은 잠재적 문제가 됩니다.

▲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 사용에 따른 소비전력 절감을 자사 ESG 홍보 포인트로 삼고 있다.(사진=삼성디스플레이 ‘2021 지속가능경영보고서’)
▲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 사용에 따른 소비전력 절감을 자사 ESG 홍보 포인트로 삼고 있다.(사진=삼성디스플레이 ‘2021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그렇다면 삼성디스플레이의 전략적 선택은 무엇이 될까요? 기술력에서 앞선 가운데 오히려 가격 측면에서도 강점이 있다는 걸 부각해야 합니다. 스마트폰 OLED 공정에 적용한 LTPO(저온 다결정실리콘 산화물)가 대표적 예입니다. 디스플레이 전력 소모를 줄이면 충전 빈도도 줄고, 그럼 자연스럽게 스코프3를 줄일 수 있죠. 나아가 탄소를 유발하는 화학가스를 대체할 신공정가스를 개발해야 하고, 또 공정에서도 탄소 발생을 줄이며 탄소를 포집할 기술도 연구개발해야 합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지속가능경영은 이제 막 발을 뗀 상태입니다. 2025년까지 중장기 목표를 세웠고 탄소 감축을 서서히 실현해가고 있죠. 반면 향후 탄소를 얼마나 줄이겠다는 구체화한 수치가 부재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가운데 국가적 지원을 힘에 업은 중국 업체들이 치고 나오고 있죠. 탄소 문제가 가까운 미래 실질적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삼성디스플레이의 노력도 절실해 보입니다.

▲ 삼성전자 온실가스 배출 관련 데이터.(사진=삼성디스플레이 ‘2021 지속가능경영보고서’)
▲ 삼성전자 온실가스 배출 관련 데이터.(사진=삼성디스플레이 ‘2021 지속가능경영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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