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업자들이 VoIP 사업을 3~4년 지연시킨 것이 오히려 득보다는 실이 클 것이다. 이제 국내 100대 기업의 전화 사업은 해당 기업의 SI 관계사가 독차지할 것이다."

한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머지않아 통신사가 제공하는 전화 서비스는 중견중소 업체나 개인들에게 한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조금은 과격한 주장마저 펼쳤다. 


SI 업체들이 기업의 통신 사업을 독식하다니 무슨 말일까? 그동안 KT, 하나로, 데이콤 등 기간통신 사업자들은 기존 구리선 기반의 전화 사업의 보호를 위해 인터넷 전화 사업에 대해 수세적인 입장을 펴왔다. 별정사업자인 삼성네트웍스가 070 인터넷 전화 활성화를 위해 전력 투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관련 시장의 개화는 멀었다.


KT나 하나로, 데이콤 등이 IP 센트릭스 기반의 070 인터넷 전화 상품을 판매하고는 있지만 별정 사업자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수동적인 입장이다. KT의 경우 기존 전화 매출을 올리기 위해 지능망과 연동한 상품이나 메신저 기반의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070 인터넷전화 사업보다는 기존 전화사업 매출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그동안 VoIP 장비업체들은 시장 규모가 큰 통신사를 대상으로 관련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지만 좀처럼 시장이 열리지 않고있다. 통신사업자들이 보수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3년전부터 일반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을 강화해 왔다.


그동안 SI 업체들은 VoIP 기술에 대한 검토와 관련 기술력을 확보할 시간을 벌었던 것. 특히 VoIP 인프라를 바탕으로 기업내 구축돼 있는 그룹웨어, ERP, CRM 등 다양한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을 연동하면서 '유니파이드 커뮤니케이션(UC)' 환경 구축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인프라 구축에 관심을 쏟고 있다.


통신사들의 경우 VoIP 인터넷전화 기반의 애플리케이션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바 있지만 제대로 된 사례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이와 관련해 업체의 한 관계자는 "기업 고객들 입장에서 PSTN 전화를 IP전화로 바꿔봐야 아무런 혜택이 없었다"며 "이 인프라와 기업내 솔루션을 연동해서 제공해야 하는데 국내 통신사업자들은 그들 스스로도 이런 환경을 구축하지 않았다. 당연히 기업 고객들이 원하는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런 배경에는 VoIP 사업을 이끌고 있는 주력 인력들이나 의사결정자들이 대부분 통신 분야를 담당했던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기업들은 인프라를 바탕으로 전체 애플리케이션을 엮는데 주력하고 있는데 통신사의 경우 전화사업 보호 측면에서 접근하다보니 고객 요구 수준에 한참 떨어지고 기업들이 요구하는 상품 개발 능력이 형편없다는 것.


통신사업자들이 자사내 서버 또는 애플리케이션팀과 함께 상품을 기획하기보다는 기존 전화사업전담팀에서 주도적으로 이끌다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은 VoIP 인프라 위에 얹을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찾고 있는데 여전히 통신 인프라 구축에만 주력하고 있어 이런 괴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가장 적극적으로 070 인터넷 전화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삼성네트웍스는 자사의 그룹웨어인 마이싱글과 전화 서비스를 모두 결합해 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기간 통신사업자인  KT나 하나로, 데이콤은 이런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다. 


당연히 기업내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구축을 담당했던 SI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 SI 업체들은 통신사가 도입했던 IP 센트릭스 솔루션을 직접 도입해 자사의 IDC 센터에 구축해 ERP나 그룹웨어 등 기업용 애플리케이션들과의 연동을 테스트하고 있다. 특히 사내 조직 변화와 이에 따른 인력들의 대이동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구현을 위해서도 솔루션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국내 IP센트릭스 시장을 석권한 브로드소프트 제품의 경우 삼성네트웍스, KT, 하나로텔레콤 등에 도입되면서 한글화 작업과 국내 통신환경에 맞는 커스터마이징이 모두 완료됐기 때문에 SI 업체들이 쉽게 제품 도입을 결정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보인다. 또 SIP 기반으로 표준이 정해져 있고, 통신 솔루션이나 기업용 솔루션들이 앞다퉈 SIP 지원을 선언했기 때문에 구축 자체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움직임 이외에도 SK와 한화가 각 계열사 SI 업체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 익스체인지 2007을 도입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두 회사는 아직까지는 큰 그림에서의 UC 전략을 펼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인프라가 구축되면 자연스럽게 관련 서비스를 연동할 수 있다. 특히 SKC&C의 경우 분당 신사옥을 '올 IP' PBX 환경으로 구축하면서 기반 인프라를 구축했기 때문에 다른 어느 기업보다 한발 앞서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기간 통신사업자들은 070 인터넷 전화 사업의 주 타깃이 기업 시장이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혀 왔다. 하지만 정작 기업 고객들이 요구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고, 자신들 스스로도 이런 변화를 추동시킬 수 있는 내부 인프라 구축을 등한시해 왔다.


해외 통신사업자들은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기 전에 자사가 먼저 관련 솔루션과 인프라를 연동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체크하고 이를 매뉴얼해서 컨설팅 상품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UC 시장에서는 이런 통합적인 접근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네트워크와 통신, 서버, 애플리케이션 팀원들이 한데 머리를 맞대야 하는 당위도 여기에 있다.


한편, 통신사업자들이 인터넷 전화 사업을 공격으로 전개하지 못하는 이면에는 이런 접근 방식 이외에도 기존 전화 사업의 보호와 인터넷 전화 사업 활성화에 따른 기존 인력들의 구조조정 문제라는 '정치적' 문제도 도사리고 있다. 기존 수익 사업의 실적은 떨어지면서 동시에 신규 수익이 많지 않은 상황. 그리고 이로 인해 단행될 대규모의 구조조정 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시장은 이런 통신 사업자들의 변화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