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체제 3년, 변화의 궤적을 따라 삼성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합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이 변곡점에 서 있다. 한때 '초격차 기술력'으로 글로벌 시장을 제패했던 삼성은 최근 몇 년 사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핵심 영역에서 잇따라 고전하며 위기론에 직면했다. 이재용 회장이 취임 3년 차를 맞은 지금 삼성이 다시 '기술의 삼성'을 복원할 수 있을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기술 공백이 부른 뼈아픈 패배?
인공지능(AI) 열풍이 글로벌 반도체 수요 지형을 바꾸는 동안 삼성은 HBM 시장의 주도권을 내줬다. 올 2분기 기준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62%로 압도적 1위를, 마이크론이 21%를 차지했다. 삼성전자 시장점유율은 17%에 머물렀다.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국면에서도 삼성이 뒤처진 이유로는 제품 경쟁력의 공백이 꼽힌다. 업계 한 관계자는 "HBM3E 제품의 수율과 품질에서 SK하이닉스에 확실히 밀렸다"며 "AI 시대의 첫 승부처에서 삼성이 주저한 것이 뼈아픈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은 뒤늦게 반격에 나섰다. 올 7월 10나노급 6세대(1c) 공정을 적용한 HBM4 개발을 완료하고 주요 고객사에 샘플을 제공했다. 연내 양산 체제 구축을 목표로 한다. 해당 제품은 전력 효율을 40% 높이고 데이터 처리 속도를 11Gbps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HBM4 공급이 본격화되면 내년 삼성의 HBM 시장 점유율이 3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엔비디아 등 글로벌 AI 칩 고객사에 대한 공급 확대로 이어져 기술 주도권 회복의 교두보가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도 삼성의 과제는 분명하다. 세계 2위 파운드리 기업이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5나노3나노 공정에서의 잇단 수율 부진으로 핵심 고객을 대만 TSMC에 빼앗겼다. 기술력의 균열이 신뢰 손실로 이어진 것이다.
기술중시 철학, 내부 혁신으로 이어질까
이 회장은 취임 후 글로벌 현장을 직접 누비며 대형 수주 계약 성사에 공을 들였다. 올 7월 이 회장의 미국 출장 직후 삼성은 테슬라와 약 23조원 규모의 AI 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에 이어 애플과 차세대 이미지센서 공급 계약을 연이어 따내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장기 침체에 빠졌던 파운드리 사업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근본적인 과제는 여전히 기술 경쟁력의 복원이다.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전 영역에서 기술 리더십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일시적 수주 성과도 지속되기 어렵다.
삼성은 현재 차세대 2나노미터(nm) 공정 개발과 양산 준비에 그룹 역량을 총집중하고 있다. 올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한 2nm 공정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의 신규 파운드리 공장에서 도입될 예정으로 향후 반도체 산업의 기술 패권을 가를 분수령으로 꼽힌다.
문제는 수율이다.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이미 2nm 공정에서 60% 이상의 양산 수율을 확보한 반면 삼성은 아직 그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내부에서는 "6개월 내 수율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주요 고객을 다시 잃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린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이에 따라 차차세대인 1.4nm 공정 투자를 2029년 이후로 미루고 인력과 자본을 2nm 조기 안정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회장 역시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며 기술 중심의 경영 철학을 거듭 강조해왔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부진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아 해법을 기술과 실행에서 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한편 이 회장은 취임 3주년을 맞은 이달 27일에도 별도의 메시지나 기념 행사를 생략한 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등 경영 현안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번 APEC 기간 중 젠슨 황 엔비디아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주요 글로벌 기업 경영진과 회동을 갖고 AI 반도체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