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 사천 본사 /사진 = KAI 제공
한국항공우주 사천 본사 /사진 = KAI 제공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올해 진행된 대형 입찰 사업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육군 UH-60 개조 사업을 시작으로 전자전기, 항공통제기(AEW&C)까지 모두 경쟁사에 내줬다. 국내 유일의 유인 항공기 제조사라는 상징성은 여전하지만 소프트웨어 중심 체계통합, 임무장비 사업에서는 1건도 수주하지 못하며 확장의 한계를 드러냈다.

가장 큰 타격은 전자전기와 조기경보기 사업이다. 두 사업 모두 봄바르디어사의 '글로벌 6500' 민간용 항공기를 동일 플랫폼으로 사용한다. 민항기를 직접 개조하는 것은 물론 향후 기체 유지·보수와 구조 해석에서까지 경쟁사와의 격차가 불가피해졌다. 앞으로 진행될 레이더·전자전·임무소프트웨어 등 전자 시스템 분야에서도 주도권을 쥐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LIG넥스원과 대한항공이 공개한 한국형 전자전기 형상 / 사진 = LIG넥스원 제공
LIG넥스원과 대한항공이 공개한 한국형 전자전기 형상 / 사진 = LIG넥스원 제공

 

전자전·조기경보기, 대한항공만 쌓는 경험치

방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방위사업청이 진행한 전자전기(스탠드오프 재머) 개발사업 심의에서 LIG넥스원-대한항공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KAI–한화시스템 컨소시엄은 동일한 기체(글로벌 6500)로 입찰했지만 사업을 가져오지 못했다.

이 사업은 민항기 4대를 개조해 적 전자전 능력을 무력화하는 항공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전자전 임무장비를 개조된 기체에 탑재하고 레이더와 지휘·통신 체계 등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총 사업 규모는 약 1조8000억원이며 2034년까지 독자 전력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감시·정찰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항공통제기 2차 사업'도 경쟁사가 따냈다. 미국 보잉(E-7A), L3해리스(미국), 사브(스웨덴) 등 글로벌 방산업체 3곳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대한항공과 손잡은 L3해리스가 선정됐다. KAI는 사브와 컨소시엄을 꾸렸지만 유찰됐다. 사업 규모는 약 3조2000억원(23억달러)이며 도입 시점은 2032년이다. 

이 사업에 사용되는 항공기 역시 '글로벌 6500'이다. 대한항공은 동일 기체를 활용해 전자전기와 항공통제기를 연속 개조하는 국내 유일 사업자가 된다. 숙련도는 물론 항공기 이해도, 부품 양산, 운용 인력 교육, 체계 통합 등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위치다. 

앞서 진행된 1조원 규모 'UH-60 개조' 사업도 놓쳤다. 미국의 베스트셀링 헬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였지만 대한항공에 자리를 내줬다. 특수기, 헬기 개조 시장에서 사실상 '3연패'를 맞았다. 

 

항공통제기 예상 이미지 / 사진=대한항공 제공
항공통제기 예상 이미지 / 사진=대한항공 제공

 

KAI 없이 짜인 '특수기' 시장

민항기를 군용으로 개조해 항공통제기·전자전기로 개발하는 사업은 미국, 스웨덴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사례가 드물다. 대규모 국책 사업으로 추진되는 만큼 기술 국산화에 거는 기대가 크다. 개발에 성공하면 국내 전자전기 유지·보수·정비(MRO) 우선권을 확보하고 관련 무기 수출 주도권까지 갖는다. 

KAI로서는 표준 선점과 운영 데이터 축적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 뼈아플 수 있다. 현재 KF-21전투기를 개조한 전자전 전투기(에스코트 재머)를 개발중이지만 아직 연구단계다. 전자전 임무장비 운용 경험이나 기술 주도권은 앞서 진행된 전자전기 사업자가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재무 측면에서도 아쉬움은 크다. 특수기·개조 사업은 신조 플랫폼 개발보다 개발 기간이 짧고 현금 회전 속도가 빠른 편이다. 올해 진행된 사업들의 규모와 전력화 시점은 △UH-60 (1조원, 2029년) △전자전기(1조8000억원, 2034년) △항공통제기(3조2000억원, 2032)으로 항공기 개발 및 전력화 사업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올해 진행된 사업들은 플랫폼에 무엇을 어떻게 얹어 통합하느냐를 봤다"며 "KAI는 독점에 가까운 기체 개발 경험을 갖고 있지만 개발 리스크가 크고 회수 기간이 긴 플랫폼 사업에 더 묶이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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