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사건파일

불법 공매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글로벌 투자은행(IB) 홍콩상하이은행(HSBC) 홍콩법인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2심 법원은 불법 공매도의 성립 시점을 '주문'이 아닌 '매매 체결'로 봤다. 검찰은 거래소에 주문을 제출한 것으로 법 위반이 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주문에서 나아가 실제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는 1심 판단을 다시 확인했다.
재판부는 자본시장법상 '공매도'의 사전적인 의미를 참고하는 등 문언 해석을 중요하게 봤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죄형법정주의(범죄와 형벌은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형법상 원칙)에 따라 문언 해석을 강조한 점은 타당하다고 평가하면서도, 법률 해석 과정에서 행정 관행 등이 상당히 반영된 것으로 보여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부는 올해 9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HSBC 홍콩법인에 1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달 검찰의 상고로 이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앞서 HSBC 홍콩법인 대차부서 소속 트레이더 A 씨 등은 2021년 8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9개 회사 주식 31만8781주(약 157억원)를 무차입 공매도한 혐의로 지난해 3월 재판에 넘겨졌으며, 양벌규정에 따라 법인도 함께 기소됐다.
검찰은 국내에서 무차입 공매도가 금지돼 있고, 적법한 차입 공매도가 되려면 공매도 주문 제출 전 주식의 사전차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HSBC 홍콩법인이 알고 있었다고 봤다. 또 HSBC 측 잔액관리 시스템은 무차입 공매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을 알면서도 A 씨 등이 대표이사 등과 공모해 무차입 공매도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1심을 심리한 서울남부지법 합의13부는 "자본시장법 제443조 제1항 제10호로 처벌되는 공매도는 주식에 관한 매도 주문을 하여 매매 체결이 이뤄진 경우"라며 HSBC 홍콩법인에 무죄를 선고했다. '공매도 주문 시점에 범행이 성립한다'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거래소 시장에서의 주식 거래는 투자자의 증권회사에 대한 매매 주문 위탁, 증권회사의 거래소 시장에 대한 호가 제출, 거래소의 호가 접수, 매매 체결, 결제의 순서로 진행된다"며 "매매 체결이 이뤄질 때 주식에 관한 매도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고 이는 공매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또 트레이더들이 대표 등과 공모했다는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1심 판결에 대해 검찰은 항소했다.
2심, '공매도' 글자 그대로 해석 강조…"처벌 기준은 매매계약 체결"

2심도 1심 판단과 같았다. 재판부는 무차입 공매도로 인한 자본시장법 위반죄는 주식에 관한 매도 주문으로 매매 체결이 이뤄진 경우를 의미한다고 했다.
먼저 자본시장법상 불법 공매도 처벌 규정에 대한 문언 해석이 판단 근거가 됐다. 법 조항에 적힌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재판부는 "자본시장법은 '매도'에 대해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법령에 정의 규정이 없는 용어는 사전적인 정의 등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뜻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참고했다.
그러면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매도' 정의에 비춰볼 때) 국어학적 의미에서 매도는 계약에 따른 처분 행위를 의미하고, 그렇다면 자본시장법상 공매도 역시 같은 취지에서 매매계약의 체결을 전제로 해석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과거 금융감독원이 매매계약 체결을 기준으로 과태료를 부과한 점도 고려했다. 2021년 4월 자본시장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무차입 공매도 행위에 과태료가 부과됐다. 그러다 형사처벌,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앞서 1심에서는 금융감독원 관계자가 "과태료를 부과할 시절에는 공매도 체결 기준으로 진행했던 것이 맞다"며 "주문이 나갔다는 사실만으로 시장에 충분히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해 주문 금액을 기반으로 하도록 법을 개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한 재판부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형사처벌과 아울러 '주문'을 기준으로 한 제재인 과징금 제도가 도입됐다"며 "그럼에도 형사처벌 규정은 과징금 규정과 달리 '주문 금액'을 명시하지 않고 있고, 종전 과태료 규정과 동일한 문언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여전히 '매매계약의 체결'을 전제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다시 말해 주문만으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법의 문언을 넘어서는 해석이며, 금감원의 과거 과태료 부과 기준 등까지 고려하면 매매 체결이 일어났을 때 처벌 대상이 된다는 취지다.
법조계 "형사처벌의 명확성 고려한 판결…'주문' 정의는 입법 과제"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죄형법정주의에 따른 문언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은 충분히 납득된다고 평가했다.
법률사무소 공간과길의 권문규 변호사는 "무차입 공매도를 처벌하고 있는 현행 자본시장법은 명확히 '매도'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를 검찰 주장처럼 매도 '주문'까지 확장하는 것은 금융투자업규정이나 금융감독원의 가이드라인만으로 성문법을 확장 해석하려는 것으로, 형사재판에서는 이런 해석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디엘지의 안희철 대표변호사는 형벌법의 명확성과 시장 규율의 균형을 동시에 고려한 판결이라고 짚었다. 안 변호사는 "법원은 공매도 범행이 성립하려면 매매계약이 체결돼야 한다는 점을 다시 명확히 판단했고 형사처벌의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을 중시했다"며 "이는 주문 단계의 위험은 금융당국의 행정제재를 통해 규율돼야 하고 형사처벌은 실제 거래가 이뤄진 경우로 한정해 규제돼야 한다는 이원적 구조를 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다만 순수한 문언 해석에만 근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금감원의 과거 과태료 부과 기준을 고려한 점 등에서 오히려 행정 관행과 정책적 고려가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것이다.
라이크 법률사무소의 김다정 변호사는 "과태료는 행정제재이고 형벌은 형사처벌이므로, 두 제재의 법적 성격과 목적은 분명히 다르다"며 "행정기관의 실무 관행이 형벌 조항에 대한 해석의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해당 관행에 과도하게 의존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등 다른 중대 불공정거래행위와의 형평성도 고려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결과 발생을 중시하는 형사정책적·목적론적 해석에 해당하며 엄격한 문언 해석과 반드시 일치한다고만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고, 대법원 단계에서 더 치열한 법리 검토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근본적으로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면서 과징금 기준과 형사처벌의 기준을 세밀하고, 동일하게 맞추지 못한 입법적인 실수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권 변호사는 "법적으로는 행정벌인 과징금과 형사처벌이 서로 다른 것은 맞기 때문에 순수 법 논리적으로만 보면 잘못된 판결이라고 볼 수는 없고, 그렇기 때문에 불법 공매도 과징금에 관한 행정소송 판결 일부에서 과징금 부과 대상인 공매도의 성립 시기를 '주문 제출'로 본 것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다만 "일반 국민 입장에서 쉽게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모순된 판결들이 대립되는 것처럼 혼란스럽게 보일 여지는 충분하다"며 "대법원 판결까지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국회에서 입법적으로 교통정리를 해 줄 필요가 있는 사안으로 보인다"고 했다.
안 변호사는 "향후 입법적으로 매매계약 체결을 넘어 주문 단계까지 형사처벌 범위를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시장법에 '주문'에 대한 정의를 별도로 하고 이에 상응하는 이익 산정 기준을 새로 규정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