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 /사진 제공=삼성전자
박학규 삼성전자 사업지원실장. /사진 제공=삼성전자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삼성의 컨트롤타워가 박학규 사장 체제로 세대교체됐다. 박 사장은 전임자였던 정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출신, 재무·관리 라인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다. 이재용 회장이 4년차를 맞아 경영정상화를 꾀하는 가운데 새로운 경영진과 긍정적인 변화의 방향성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재용 회장이 택한 '안정의 리더십'

삼성전자는 이달 7일 기존 임시 컨트롤타워였던 '사업지원TF'를 상설 조직인 '사업지원실'로 전환했다. 신임 실장으로 박 사장이 임명됐다.

박 사장은 청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경영과학 석사를 취득했다. 그룹 미전실에서 경영진단팀장을 지내며 재무·기획 업무를 총괄했고 이후 삼성전자 DS(반도체)·DX(완제품) 부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연이어 맡았다. 양대 사업부의 자금 운용과 투자 계획을 직접 관리한 경험 덕분에 재무 구조와 사업 전략을 동시에 이해하는 몇 안 되는 관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말부터는 사업지원TF에서 정 부회장과 함께 그룹 전반의 재무·경영을 챙겨왔다.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빠르게 실행으로 옮기는 실무 감각 역시 높이 평가된다. 조직 내에서는 '현장형 재무 관리자'로 통한다.

이번 인사가 박 사장에게 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투자, 파운드리 전략, 글로벌 설비 효율화, 인력 구조 최적화 등 이재용 회장이 직접 챙기는 핵심 과제들은 모두 자금 운용과 리스크 관리와 맞닿아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투자 사이클이 수조 원 단위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삼성은 내부 재무 체력을 다시 다져야 하는 시점이다.

박 사장은 사업 현장의 원가 구조와 투자 효율성을 동시에 읽어내는 감각을 지녔다. 개별 사업부의 손익을 세밀히 파악하면서도 그룹 전체의 자금 흐름을 통합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그의 역량은 단기 성과보다 재무 안정성과 자본 배분의 정밀도를 중시하는 이재용 회장의 경영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이재용-박학규' 뉴 리더십 신호탄

박 사장의 경력은 용퇴한 정 부회장과 유사한 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미전실 출신의 재무 전문가로 위기 국면에서 숫자와 원칙으로 조직을 지탱해온 인물들이다. 다만 재무·관리 조직의 비대화로 인해 현상 유지에만 급급했다는 '삼성 위기론'을 고려하면 컨트롤타워의 중심이 박 사장으로 이동한 것은 큰 변화가 아니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 부회장이 위험을 최소화하며 보수적 재무운용에 집중한 결과 삼성은 위기를 버텨냈지만 기술 리더십의 공백이라는 대가를 치렀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실제로 2021년 이후 삼성전자는 반도체 초격차를 주도하던 시절과 달리 파운드리 점유율이 TSMC에 2배 이상 뒤처졌졌다. HBM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에 선두를 내줬다. 이 시기 대규모 설비투자와 인재 확보가 보수적으로 이뤄지며 결정적인 투자 타이밍을 놓치게 됐다.

삼성의 입장에선 급격한 방향 전환 대신 안정도 필요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대규모 인적 개편은 오히려 더 큰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반도체 업황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조직 안정성을 흔드는 대형 인사는 시장에 불필요한 신호가 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주요 사업부를 중심으로 잇따른 인사와 조직개편으로 내부 피로감이 누적된 점도 부담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이 회장과 정 부회장이 미전실 해체 이후 8년간 지켜온 구조를 깨고 경영 정상화를 위한 의사결정의 합치를 보였다는 점은 긍정적인 대목으로 보인다. 또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 족쇄를 풀면서 경영 전면에서 정 부회장 대신 그룹을 이끌어갈 수 있게 된 점도 크다. 이 회장이 변화와 함께 추가 연말 인사로 합류할 사장단의 역할도 막중해졌다.

향후 박 사장은 이 회장과 함께 뉴삼성의 기반을 마련할 전망이다. 그간 내부적으로 위기감이 컸던 조직문화와 소통 방식에 대한 문제점 등 기존의 잘못된 관행은 탈피하고 AI·시스템반도체 등 차세대 투자 국면으로 안정적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조직의 안정성은 높이면서도 정 부회장과는 다른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 박 사장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재무 안정과 혁신 추진이라는 상반된 목표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향후 삼성의 방향성이 결정될 것"이라며 "박학규 사장이 짊어진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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