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환경위기가 심화되면서 폐플라스틱은 더 이상 ‘버려진 부산물’이 아니라 위기를 가속하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전 세계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약 2억2000만t에 이르렀고 1인당 연간 배출량도 28㎏까지 올라섰다.
사용량 증가와 처리능력 정체가 맞물리면서 한국 역시 2022년 기준 1260만t의 폐플라스틱을 배출하며 같은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초로 폐플라스틱을 연소하지 않고 나프타급 고품질 재생원료를 생산하는 국내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들어서 주목된다.
도시유전은 18일 전북 정읍시에서 ‘웨이브 정읍(WAVE Jeongeup)’ 플랜트 준공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정영훈 도시유전 대표와 김정윤 회장, 노갑선 우리기술 대표와 전대영 부사장, 박정우 웨이브정읍 대표 등 20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 시설에서는 폐플라스틱을 태우지 않고 300℃ 미만에서 촉매로 분해해 나프타급 재생원료를 만든다. 우리기술과 합작해 건설됐으며, 연간 6500t의 폐플라스틱·폐비닐을 처리해 최대 4550t 규모의 재생원료유를 생산할 수 있다.
농업용 폐비닐 등 혼합폐기물도 별도의 선별 없이 투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이 특징이다. 회사 측은 기존 고온 열분해 방식에 따른 연소·배출·저순도 문제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도시유전의 공정은 세라믹 촉매와 전기에너지를 활용해 폐플라스틱을 비연소 상태에서 저온 분해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다이옥신·퓨란 등 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으며, 플라스틱 성분만 선별적으로 분해돼 고품질 재생유를 얻을 수 있다. 이 기술은 6건 이상의 관련 특허를 기반으로 지난 30여년간 연구개발(R&D)을 이어온 결과물이다.

이 공장은 국제 지속가능성·탄소인증 체계인 ISCC PLUS,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공정안전관리(PSM),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품질 검증을 모두 획득했다. 특히 ISCC PLUS는 유럽연합(EU) 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재생원료를 구매할 때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기준이다.
국내 단일 상용 플랜트가 자체 기술로 나프타 크래킹 공정 투입이 가능한 수준의 재생원료 생산 인증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생산된 재생유는 EU를 비롯해 미국·중동·동남아 등 해외 시장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도시유전은 이미 베트남 남안그룹과 연간 최대 150억원 규모의 재생원료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중동·유럽 지역 기업들과의 후속 협상도 진행하고 있다.
준공식에는 사우디아라비아 페드코, 영국 사비엔테크놀로지, 글로벌 원자재 트레이더인 트라피규라, 독일 바스프 등 해외 관계자들이 참석해 상용화 수준을 직접 확인했다.
저온열분해 공정은 EU가 요구하는 ‘탄소순환루프(Circular Carbon Loop)’ 구조에도 부합한다. 연소 과정을 거치지 않고 폐기물을 원료로 되돌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탄소가 대기 중에 방출되지 않고 산업 내에서 순환하는 형태의 공정으로 인정된다. 도시유전 측은 정읍 플랜트를 가동할 경우 연간 약 1만7550t 규모의 탄소배출권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정영훈 도시유전 대표는 “이는 단순한 기업의 기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기후·환경위기 시대에 세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친환경 기술의 상징”이라며 “탄소중립 기술을 수입하는 국가에서 수출하는 국가로 전환할 수 있는 지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투자자로 참석한 압둘모센 알자밀 페드코 대표는 “중동국가와 지역 내 도입이 필요한 친환경 기술이라고 판단해 투자를 결심했다”며 “이번 계약뿐 아니라 도시유전이 수용하는 범위에서 지속적인 투자도 협의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