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초부터 정보통신 사업의 핵심 인프라로 각광을 받았던 IDC들이 전력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3~4년전부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이 없다.
IDC 담당자들은 최근 전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고 물으면 "산업용과 같은 정도로 지원해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국내 IT 서비스의 활성화는 요원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체계는 주택용, 산업용, 일반용(상가 및 공공건물), 농사용(농.어업), 교육용, 가로등 등 6가지 용도로 분류하고 차등요금을 적용하는 '용도별 차등요금제'이다.
일반용과 주택용에 대하여는 높은 요금을 부과하고 산업경쟁력 향상과 농·어촌 경제지원을 위해 산업용과 농사용에 대하여는 낮은 요금을 부과하는 것.
또 각 요금제에 따라 단일 건물에 공급되는 전력도 한정돼 있다. 국내 IDC들은 일반용 전기를 공급받고 있는데 단일 건물에 공급되는 전력의 한도량은 1만4000KW였다. 1만4000Kw의 전기는 변전소에서 IDC 센터로 직접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선로를 통해 공급되는데 90년대 구축된 IDC들은 대부분 이런 설비를 사용하고 있다.
1만4000Kw라고 하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1만Kw는 보통 30평 아파트 2만가구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중소도시가 8만에서 10만 가구를 수용한다고 봤을 때 기존 IDC들 5개 정도가 그만큼의 전력을 소비하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실로 엄청난 전력이 IDC에서 사용되고 있다.
고객 성장 더 이상 못따라가
이런 상황인데도 전력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고 하니 IDC들이 처한 고민을 현실적으로 계산해 보자. 현재 IDC의 최대 고객들인 포털들은 1U 서버를 도입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U 기준으로 한 랙당 6Kw를 쓴다고 가정할 때 20대~25대 사용이 가능하다. 랙 하나가 차지하는 공간을 0.7평으로 잡으면 랙이 500개만 되도 350평이 든다. IDC 건물 한층에 해당된다.
문제는 한 층이 모두 차는데 있지 않다. 이 한층에 공급되는 전력량이 더 큰 문제가 된다. 1U 서버에 탑재되는 서버 20대를 기준으로 하면 3000Kw(3메가와트)가 필요하다. 4개층이면 1만4000Kw(14메가와트)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1만 4000Kw는 일반용 전기를 사용하는 고객들이 단일 건물에 수용할 수 있는 최대의 수용량이다. 단숨에 이를 뛰어 넘는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하다. 6Kw를 실제 사용하려면 공급되는 전력은 그보다 더 높아야 한다. 보통 공급되는 전원의 80%를 사용한다면 공급되는 전력은 8Kw가 돼야 한다. 문제는 항온 항습 장비가 필요하다는 사실. 항온 항습 장비의 경우 1.5배가 필요하다. 6Kw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12Kw가 공급돼야 관련 시설들이 안전하게 가동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 사용하는 전기량의 두배 정도가 기본적으로 공급돼야 한다는 것.
IDC들이 전력 문제로 고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래를 예측해 전력이 공급되는 파이프를 키워놓더라도 지금처럼 포털들의 서비스가 매년 40~50% 정도 성장하면 전력 인프라 투자에만 수십억원을 계속 투자해야 하는데 이를 적시에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고 새로운 IDC를 건설하기도 마땅찮다.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하려면 수도권에 위치해야 하는데 마땅한 터를 찾기도 힘들뿐더러 땅값도 장난이 아니다. 건물 부지 확보와 건물 공사 등을 따지지 않더라도 걸림돌이 그만큼 많다. 막대한 투자를 단행한다고 해서 IDC들의 수익이 그만큼을 상회하지도 않는다. 투자 금액을 밝히고 수익이 어느 정도 될 것이라고 밝히는 순간 사업 수익성을 지적하는 시장의 목소리가 단번에 날라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전력 설비를 교체하는데는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는지 서울 강남 성모병원을 살펴보자. 강남성모병원은 병상의 증축과 신규 건물 증설로 일반용 전기를 일반 선로가 아닌 변전소와 병원간 전용 선로로 구축하기 위해 협상하고 있다. 한국전력 강남 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2만Kw 전용 라인을 증설하기 위해 대략 30억원의 자금이 투자된다. 물론 이는 수용자 부담"이라고 설명한다.
블레이드 도입 절대 안돼
1세대 IDC들이 일반용 전기 1만4000Kw를 수용하고 있더라도 이를 전용으로 바꿀 때는 변전소와 IDC간의 위치, 전선의 굵기와 전력을 보낼 수 있는 허용량 등을 계산해야 한다. 그것도 지중에 설치하기 위해서는 수십억원은 쉽게 넘어간다. 각 IDC들이 고객 유지를 위해서 IDC 센터들마다 이 정도의 전력 설비에 투자를 단행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고집적, 고밀도의 블레이드 서버와 스토리지, 네트워크 장비들이 출시되고 있다. 현재는 1U 서버 기준으로 1랙당 20대~25대를 수용하지만 블레이드는 한 랙당 80대까지 꽂을 수 있다. 기존 서버들 25대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80대라니. IDC들에겐 아찔하다.
블레이드 서버 이야기만 나오면 IDC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력 인프라 투자 못지않게 블레이드의 경우 하중 문제도 있다. 각 렉당 하중이 3.5배에서 4배 정도 늘고 한 층에 있는 모든 랙을 블레이드로 할 경우에는 자칫하다간 건물이 주저앉을 수도 있다. 기존 IDC들이 블레이드 서버를 도입하려는 고객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IDC들은 그동안 네트워크 트래픽과 상면 공간 위주로 과금해 왔는데, 상면 공간이 대폭 축소되고, 전력 인프라 투자 문제가 거론되기 때문에 블레이드 서버를 도입하길 꺼려하고 있다.
전력 문제에 대해 KIDC의 한 관계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IDC들은 전기세와 유사 시설 관리 투자비가 적게는 1/10부터 많게는 1/3까지 차지한다. 또 이 요금 중 서버 장비와 항온 항습 장비가 90% 정도의 전기를 소모한다. 나머지 10%는 조명기기나 엘리베이터 등으로 전기 절약을 위해 IDC들이 손쓸 수 있는 방안이 많지 않다. 애초부터 장비 자체가 전력을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조명기기나 엘리베이터 가동 같은 고정비용의 10%만 절약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호스트웨이 IDC의 한 관계자는 "해결 방법은 하드웨어 벤더들이 획기적으로 전력 소모량을 줄일 수 있는 장비를 만들던가 아니면 대용량 전력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관련 설비 투자 금액을 낮춰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고정비용이 너무 느는 악순환을 산업용 전기를 사용하면서 조금은 시간을 벌자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동안 왜 이 문제가 심도있게 거론되지 못했을까? 포털 업체의 한 관계자는 "IDC간 유치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고객 확보가 우선이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제는 시장이 정리됐다. 시장은 KT, LG데이콤 양강 체제에 하나로텔레콤과 호스트웨이 등이 뒤쫒고 있고, 나머지 중소 IDC들은 경쟁에서 도태됐다.
그나마 여유가 있는 대형 IDC들은 여유가 있지만 중소 IDC들은 전력 문제로 더 큰 고민에 빠졌다. 고객 유치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던 이들은 IDC 시장 조정기를 거치면서 그동안 쉬쉬해 왔던 전력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할 태세다.
지난 7월 관련 업체들이 모여 한국IDC협의회를 설립했고, 설립 후 첫 번째 문제제기가 산업용 전기로의 전환이다. 이 협회에는 KT·하나로테레콤·온세통신 등 4사를 포함해 프리즘커뮤니케이션스·삼성네트웍스·엘림넷·케이알라인·KINX·엔터프라이즈네트웍스·CJ시스템즈 등이 참여했다. KIDC는 데이콤에 인수합병된 후 관련 협회에서 탈퇴했다.
한국IDC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관련 업체간 경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 힘을 합치지 못했다"고 전하고 "더 이상 전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협의회 소속 회원사들에 팽팽하다"고 관련 문제 제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런 문제제기는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회장 윤석경) 산하 IT인프라서비스포럼에서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IT인프라서비스포럼측도 이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하기 위해 학계 전문가들을 찾아 공론화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IT인프라서비스포럼의 한 관계자는 "국내 IT 서비스 산업 활성화를 위해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것이 포럼의 입장"이라고 전하고 "이 문제를 다룰 학계 전문가들을 모시고 있다"고 밝혔다. 공식적인 입장도 조만간 도출될 예정이다.
이들은 산업용과 농사용 등에 낮은 요금을 부여하고 있는 것처럼 차세대 성장 동력인 IT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산업자원부가 전향적 자세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최근 한미 FTA 협정과정에서도 미국측은 국내 전기료의 용도별 차등요금제를 시정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차등요금제는 정부 정책에서 나온 결과물로 한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차등요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도 손을 꼽을 정도로 적은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IDC들은 전력 공급량을 높여주거나 인프라 개선 요금을 대폭 낮춰주는 방안, 혹은 이 비용을 한전이 부담하는 안에 대해서도 거론하고 있지만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전은 전기공사비를 한전이 전액 부담할 경우에는 한전 부담액이 결국 전기요금으로 전가되어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되며 또한 일정한 공사비를 해당 고객에 부담시키지 않을 경우 무분별한 전기사용신청에 따라 막대한 재원이 비효율적으로 투자됨으로써 에너지공급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왜곡을 초래하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 외국의 경우에도 전기공사비는 고객이 부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전력 김장수 과장은 "지난 7월 1일 4만Kw까지 일반 전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약관을 변경했다. 2만Kw로도 모자란 고객들의 선택 폭을 넓힌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전 입장에서는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IT 업체들에게만 다른 조건을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고 명확히 하고 있다.
각 사업자들이 미연에 관련 사항을 체크하고 대용량의 전기를 받으라는 설명이다. 이들은 서울 롯데월드나 코엑스의 경우 15만4000볼트로 30만 Kw를 사용하고 있는 만큼 필요하면 이런 설비를 구축하라는 것.
문제는 일반 공급 선로의 경우 최대 1만Kw까지 사용할 수 있는데, 1만Kw 이상 사용을 위해서는 전용공급선로를 통해 전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전용선로으 경우 1만, 2만, 4만Kw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지긴 했지만 앞서 지적한 대로 상당한 예산이 투자돼야 하는 대목이다. 전용공급선로의 경우 인입비용이 일반공급선로대비 약 2배 이상 소요된다.
한 IDC 업체의 관계자는 "한전 내부 규정상 일반공급선로에는 1만KW까지 제공한다는 규정이 바뀌면 추가적인 비용이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돼 그때까지 보류하고 있다"고 전했다. 감이 익어 떨어질 때까지 버텨보겠다는 태도.
이런 상황에서 IDC들이 고육지책으로 꺼내 든 카드가 바로 전기세 부과다. IDC들은 랙 당 2Kw나 2.5Kw 정도의 전력을 사용할 때까지는 요금을 부과하지 않지만 그것을 초과하면 전기세를 받겠다고 나선 것. 이는 모든 IDC들이 공통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방안이다.
KIDC의 한 관계자는 "전기세를 부과하게 되면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저전력 제품을 사용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고객들의 구매 패턴도 바뀔 것으로 본다. 현재로선 이 방법말고 대안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DC들이 전기세를 부과하려하자 벌써부터 이 문제와 관련해 고객들과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정확한 전기 사용 통계와 계측 내역을 공개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 고객들이 입장이다. 해법은 보이지 않고, 문제는 터지기 직전인 상황에서 IDC와 입주 고객들간 서로의 목소리만 커지는 상황이다. 전력 덫에 걸린 IDC와 고객들. 지금 처한 IT 강국의 현주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