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현판 /블로터DB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현판 /블로터DB

이재명 대통령이 사회적 배려층이 높은 금리를 감당하는 것을 '금융계급제'라고 비판하면서 금융권 전역에 경고등이 켜졌다. 금융당국은 물론 시중은행 등 주요 금융사들이 서민·취약계층 대상의 지원책을 재정비하느라 분주한 상황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5대금융(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 임원들을 불러 금융사별로 차별화된 서민금융 상품을 내놓을 것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 수위와 관련해 금융권에서는 '단순한 정책 메시지를 넘어 사실상 구조개선 요구에 가깝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더욱이 '포용금융'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은행권은 자체 서민금융 부문에서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민은행은 서민대출인 '새희망홀씨Ⅱ' 신규 취급 금리를 연 10.5%에서 9.5%로 낮췄고 신한은행은 우대금리 범위를 확대해 실질금리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조정했다.

일반 신용대출에서도 신용점수 600점 이하 저신용 고객에 대한 가산금리를 낮추고 우대금리를 올리는 등 서민·취약계층의 접근성을 높이는 조치를 내놓고 있다. 정책 변화의 가능성이 가장 큰 영역은 서민금융 상품의 금리 체계다. 서민금융의 대표 상품인 햇살론은 정부 보증을 기반으로 하지만 금리가 15~20%대라 포용금융의 취지와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햇살론 금리 인하가 포용금융 강화의 상징적 성과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금융위는 햇살론 금리를 연 15.9%에서 9.9%(사회적 배려자)로 최대 6%p까지 낮추는 방안을 내년도 예산안에 포함해 국회의 심사를 받고 있다.

다만 은행권 내부에서는 대출 규제 과정에서 이미 '금리역전'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은행연합회의 신용평가사(CB) 신용점수별 금리 통계에 따르면 일부 은행에서는 9월 취급한 신규 가계대출 가운데 신용점수 600점대 대출자의 평균 금리가 상위 구간인 700~800점보다 낮아진 사례가 포착됐다. 이는 포용금융 확대로 은행이 선제 조치에 나서면서 서민대출 금리가 낮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햇살론 금리 인하가 현실화되면 금리역전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저축은행·카드사 등 제2금융권 신용대출 금리와의 역전 가능성도 거론된다. 최저신용자특례보증과 햇살론15 이용자의 평균 신용점수는 8월 기준 각각 608점, 647점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반면 민간 금융회사가 실제 적용하는 금리는 이보다 신용도가 높은 차주에게도 연 14~15%대다. 지난달 가계신용대출을 취급한 30개 저축은행이 신용점수 701~800점인 차주에게 내준 대출의 산술평균 금리는 연 15.39%였다. 여신금융협회 자료에서도 같은 신용 구간의 차주가 이용한 장기카드대출(카드론) 평균 금리는 연 14.84%로 집계됐다.

이와 비교하면 정부가 검토 중인 '햇살론 금리 인하안(대상별 연 9.9~12.9%)'은 민간 금융사의 일반 신용대출 금리보다 오히려 낮아지는 구조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고신용 저금리, 저신용 고금리'를 전제로 한 기존 신용평가 기반의 금리 체계와 충돌할 수 있다는 비판을 낳는다"고 말했다.

정책상품의 금리를 과도하게 내리면 민간 금융회사가 중·저신용자 대상의 신용대출 공급을 줄이면서 공급 기반이 축소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책 서민금융 공급 규모가 물리적으로 한정된 가운데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정책상품에 수요가 몰리면 기존 취약 차주가 오히려 이용 기회를 잃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책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결과적으로 신용도가 더 높은 차주가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구조로 변질될 수 있다"며 "서민금융의 형평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