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추진 중인 대규모 자사주 소각이 이재용 회장의 지배력에도 변화를 낳고 있다. 주주환원을 강화하는 시장친화적 정책이지만 발행주식 수가 줄면서 최대주주 지분율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구조적 효과가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20일 삼성물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장의 지분율은 19.76%로 집계됐다. 1년 전(18.90%)과 비교해 0.86%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다만 주식 수는 3388만220주로 전년과 동일하다. 이 수치는 2021년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으로부터 120만5718주를 상속받아 현재 수준(3388만220주)에 이른 이후로 지금까지 한 차례도 변동이 없다.
이 회장의 지분율 상승은 삼성물산이 추진 중인 자사주 소각 정책에 따른 결과다. 앞서 삼성물산은 2023년 주주환원 확대 방안을 발표하며 약 3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3년에 걸쳐 분할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월 보통주 781만주와 우선주 전량을 먼저 소각했다. 올해 2월에도 보통주 781만주를 추가로 소각했다. 내년 예정된 물량까지 반영될 경우 이 회장의 지분율은 20%대에 진입하게 된다.
자사주 소각에 따른 지분율 변화는 산술적 효과에 불과하지만 삼성물산이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한 회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가볍지 않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이며 삼성물산이 지닌 19.34%의 지분을 통해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있다. 이어 삼성생명이 지닌 지분 8.51%를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한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의 지분율 변동은 곧바로 삼성 전체 지배구조의 안정성과 연결되는 민감한 지표로 해석된다.
삼성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는 이유도 현재의 이 지분 구조와 밀접하다. 지주사 전환 시 금산분리 규제가 강화돼 금융계열사는 비금융사 지분을 지금처럼 보유할 수 없다. 이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을 대거 매각해야 한다. 이는 그룹 지배력의 중심축이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여기에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워낙 커 지주사·사업회사 분할 과정에서 발생할 세금·비용 부담도 크다. 제조와 금융이 얽힌 삼성 특유의 복합한 구조를 감안한다면 현재 체제가 총수 지배력 유지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슷한 흐름은 삼성전자에서도 나타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63%에서 1.65%로 소폭 증가했다.
자사주 소각은 주당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형적인 주주친화 정책이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주주환원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발행주식 수가 줄었고 그 결과 이 회장의 지분율도 의도와 무관하게 상승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자사주 소각이 단순히 '주식을 없애는 조치'를 넘어 전체 주식 수를 재조정함으로써 기존 주주의 지분 구조에도 직접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은 어디까지나 주주환원 강화를 위한 조치로 지배력 변화는 부수적인 결과"라며 "특히 우리 입장에서는 남은 소각분의 처리나 규제 변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단순히 '이재용 회장 지분 확대'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