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품수수 혐의를 받는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정공법을 택했다. 경찰의 압수수색과 출국금지 조치에다 국정감사 기간에 집중포화까지 받으면서 강 회장의 중도사임이 점쳐졌다. 본인 입건뿐 아니라 '보은인사' 논란, 단위조합장의 전횡과 선거비리, 내부통제 이슈 등이 잇따라 불거지자 강 회장에 대한 사퇴 압박 수위가 높아졌다.
하지만 그는 '뼈를 깎는 자정'을 천명했다. 국감 현장에서 경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힌 지 2주 만에 자구책을 제시했다. 복수의 고위관계자는 "선출직인 강 회장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지 않은 시점에서 자진사퇴할 가능성은 작다"고 전했다. "그의 강단 있는 성격상 직접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는 전언도 이어졌다.
강 회장 자신은 잔혹사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앙회장실이 압수수색된 지 한 달이 지난 현재 강 회장의 경찰 출석이 임박했다. 역대 회장 중 상당수가 온갖 비리로 불명예 퇴임한 사태가 재연될 수 있지만 강 회장은 수사기관의 조사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스스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공언한 이상 강 회장의 임무는 명확해졌다. 남은 2년여의 임기 동안 조직쇄신에 주력해야 한다. 12만명의 임직원을 대표하는 '농민 대통령'으로서 배수의 진을 쳐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국감에 출석한 강 회장은 또다시 제왕적 인사권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먼저 농협중앙회 상무급 임원 22명 중 18명이 강 회장 선거캠프 출신들로 채워진 것이 도마 위에 올랐다. 농협중앙회가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 NH농협금융지주의 비상임이사를 선임하는 과정도 석연치 않았다.
앞서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이 확정된 이사가 농협금융 비상임이사에 선임된 것을 두고 강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강 회장 측근으로 알려진 그는 현행 농협법상 농협중앙회에는 재취업할 수 없지만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는 금융지주에는 신규 입사가 가능했다.
이와 관련해 '(강 회장은) 중앙회장 중심의 엽관적 지배구조를 심화시키고 조직을 회장의 사유물로 전락시켰다' '법망을 피한 낙하산인사, 꼼수 보은인사'라는 질타를 받았다.
강 회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3월 농협금융 산하 NH투자증권의 대표이사 선임 당시 강 회장은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인선 시스템을 무시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강 회장 측근을 보임하려다 자회사 대표 등과 갈등을 빚어 결국 금융감독원의 검사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전국 각지의 단위 농축협은 1110개에 달한다. 농협 지점 등 네트워크는 상호금융권(농협·새마을금고·신협·수협·산림조합) 중 가장 많다. 이곳의 수장들은 지역조합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이에 이권을 차지할 후보 간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고 선거 전후 각종 불법행위도 반복되고 있다.
선거법 위반은 4000여건에 이르며 이 중 60%는 기소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일례로 골드바와 현금 등의 금품이 조합원들에게 지급된 정황이 드러났다. 강 회장도 경남 합천군 율곡농협에서 내리 5선을 한 이력이 있다. 그 역시 율곡농협 조합장 시절에 수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가운데 관련 녹취록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단위조합에 대한 검사권을 갖고 암행검사 등을 실시하지만 역부족인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조합장 선거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강 회장의 리더십과 직결되는 대목이다.
내부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 NH투자증권의 전무급 임원이 상장사 공개매수와 관련된 미공개 정보를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달해 수십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코스피 5000' 공약과 배치되는 행위로, 대통령이 언급한 '패가망신'의 시범 케이스로 지목됐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강 회장의 쇄신책이 요구된다. 단순한 '지배구조 선진화, 윤리경영 정착' 등의 구호로는 역효과만 초래할 뿐이다. 중앙회 직속의 소수 임원을 대상으로 한 꼬리 자르기, 면책성 인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농협이 예고한 '전면적 인적쇄신'을 단행할 때다. 계열사만 33개인 농협중앙회의 상근임원, 집행간부 등 100여명 모두를 시험대에 올려야 한다.
고질병으로 일컬어지는 '제 식구 감싸기' '회전문 인사'도 불식시키기를 촉구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농협 출신 경력단절자의 범농협 계열사 재취업을 제한하고, 계열사 대표 선임 때 중앙회장의 개입도 원천차단하는 등의 대책을 실행해야 한다. 이에 대해 농협은 "오직 경영성과와 전문성을 기준으로 연말인사를 단행하고 부진한 임원은 대대적으로 교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회장이 발언한 '환골탈태' 개혁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206만명의 조합원이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