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의 현금자산 규모가 올해 들어 반년 동안에만 2조원 넘게 쪼그라들며 국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00대 상장사들 중 다섯 번째로 큰 감소 폭을 나타냈다. 미국 관세의 직격탄을 맞으며 이익이 1년 새 1조원 넘게 줄어든 파장이 현금흐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 간 협상 타결로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됐지만, 낮아진 관세율도 여전히 두 자릿수 대라는 점에서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일 코스피 상장사들 중 투자전업사와 펀드를 제외하고 지난달 말 시총 상위 100개사의 분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기아의 올해 상반기 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1조4979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5.2%(2조687억원) 줄며 조사 대상 기업들 중 감소액 5위를 기록했다.
이는 기업이 품고 있는 자산 중에서도 가장 현금으로 유동화하기 쉽고, 그래서 가치가 변할 위험이 거의 없는 자산이다. 현금을 비롯해 취득일로부터 만기가 3개월 이내인 금융상품에 들어 있는 자금 등이 포함된다. 당좌·보통예금처럼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통장에 넣어둔 돈이 대표적이다.
기아의 현금자산 위축은 부진한 실적과 맞닿아 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모두 1조원 넘게 빠졌다. 반면 매출은 오히려 성장하면서 수익성은 더욱 나빠졌다. 기아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5조773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3%(1조2960억원) 줄었다. 당기순이익 역시 4조6608억원으로 같은 기간 19.1%(1조1049억원) 감소했다. 매출만 57조3671억원으로 6.7% 늘었다.
이런 흐름은 본 사업의 현금 창출력에서도 그대로 감지됐다. 기아의 올해 상반기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플러스(+) 5조3528억원으로 1년 새 10.8%(6489억원) 줄었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이름 그대로 기업의 본업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보여준다.
현금자산의 최종적인 감소 폭이 이보다 더 컸던 데에는 배당 등의 영향이 추가로 작용했다. 올해 초 기아가 지급한 지난해 실적 몫의 배당금은 2조5590억원으로 전년 대비 16.7% 증가했다.
투자를 통해 빠져나간 현금의 규모는 도리어 축소됐다. 기아의 올해 상반기 투자활동 현금흐름은 마이너스(-) 3조607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3% 줄었다. 다만 설비 투자는 꾸준히 이뤄졌다. 기아의 자본적 지출(CAPEX)은 1조4658억원으로 같은 기간 14.0% 늘었다. CAPEX는 미래의 이윤과 가치 창출을 위한 유형자산 취득에 쓴 비용이다.
매출이 불어났음에도 이익이 줄고 현금자산이 쪼그라든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4월부터 한국산 자동차에 25%에 이르는 관세를 부과했다. 이로 인해 올해 2분기 기아에서 발생한 손실액만 7860억원에 이른다는 추산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난달 말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한국산 자동차의 관세율이 15%로 낮아지게 됐다는 점이다. 그래도 여전히 변수는 남아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를 적용할지가 분명치 않아서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유럽연합 등에 대한 상호 관세율을 확정하고 공식 발효한 지난 8월 7일을 기준으로 할지, 아니면 관련 법안이 제출되는 이번 달부터일지에 따라 기업들의 손익이 수천억원가량 변할 수 있다.
관세율이 이처럼 떨어진다 해도 기아 등 완성차 업계가 받는 압박은 상당할 전망이다. 이전까지 한국 자동차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으로 무관세를 적용받아 왔기 때문이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세율이 당장 낮아져도 기존 재고에 매겨진 관세를 고려하면 국내 완성차 업체에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건 내년이 돼야 할 것"이라며 "15%의 부담도 전에 없던 수준인 만큼, 실적과 현금흐름에 지속적인 악재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