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이 사실상 신세계그룹의 승리로 기운 가운데, ‘동맹군’인 네이버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네요.

17일 이베이 미국 본사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이사회를 열고 이베이 코리아 우선협상대상자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본입찰에서 4조원 안팎을 써낸 신세계가 이베이코리아의 새 주인으로 확실시되고 있는데요. 롯데쇼핑도 백기를 들었으니 막바지 조율만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신세계와 손잡고 입찰에 참여했던 네이버는 당초 총 인수금의 20%를 부담할 전망이었습니다만, 계약 막바지가 되자 ‘불참’을 선언하고 발을 뺐단 얘기가 투자은행(IB)업계를 중심으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네이버는 지난 3월 신세계와 온·오프라인 유통 협업을 약속하면서 2500억원 규모로 지분을 맞바꿨습니다. 쿠팡에 맞서는 이른바 ‘반(反) 쿠팡 연대’의 포석이었는데요. 이 ‘딜’을 위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경기 성남시에 있는 네이버 본사를 직접 찾아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만나기도 했었죠.

△이해진 네이버 GIO(사진=네이버)

적으로 적을 친다면

신세계의 이베이코리아 인수, 네이버에게도 득은 있습니다. ▷치고 올라오는 쿠팡에게 견제구를 날릴 수 있고 ▷신세계의 물류 투자 ‘덕’을 볼 수 있는 데다가 ▷페이·멤버십 등 각 영역에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어서죠.

지난해 거래액 기준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네이버(18%·27조원), 쿠팡(13%·22조원), 이베이코리아(12%·20조원) 순입니다. 규모만 보면 네이버가 선두입니다만, 쿠팡보다 성장세는 낮습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2020년 쿠팡의 거래액은 66.7% 증가한 반면 네이버 커머스는 35.4% 성장하는 데 그쳤습니다. 매출도 쿠팡은 지난해 전년대비 91% 늘어난 13조원을 기록했지만 네이버는 1조896억원에 불과했고요. 이번 인수로 신세계가 G마켓·옥션·G9 등을 거느린 이베이코리아를 품게 되면 SSG닷컴과 단순 합산했을 때 총 거래액이 24조원(15%)까지 늘어납니다. 우군인 신세계가 쿠팡을 단박에 앞서게 되는 거죠. ‘적으로 적을 치는’,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나 할까요. 게다가 네이버 검색으로 G마켓·옥션·G9에서 상품구매가 일어나면 이베이코리아로부터 수수료도 챙길 수 있습니다.

△신세계는 SSG닷컴 상장 일정을 내년으로 앞당길 예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사진=SSG닷컴)

네이버의 약점으로 꼽히는 물류·배송에서도 덕을 볼 가능성이 생깁니다.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는 이번 인수를 기점으로 물류·배송 등에 대규모 투자를 쏟을 계획인데요. SSG닷컴을 통해 쌓은 자체 물류·배송 역량을 이베이코리아에 접목시킬 거란 추측이 나옵니다.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이마트·이마트24 등 오프라인 매장을 도심형 물류창고(MFC)로 활용해 전국구 배송망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죠. 이베이코리아의 직매입 비중을 키워 쿠팡에 대적할 거라는 전망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쇼핑을 키우고는 있지만, 배송을 직접 할 계획은 없습니다. ‘문어발’로 일을 벌이기보단 잘 나가는 회사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죠. 그래서 작년에는 CJ대한통운과 주식 3000억원어치를 맞바꿨습니다. 올해 신세계와 ‘혈맹’을 맺을 때도 ‘물류 경쟁력 강화’를 협력안으로 내걸었죠. 첫 사례로 오는 8월 네이버에서 신선식품 장보기를 선보일 계획입니다.

페이·멤버십에서도 기대효과가 있기는 합니다. 네이버는 쇼핑을 키우고, ‘단골’을 확보하기 위해 유료회원제인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을 통해 이용자를 끌어 모으고 있는데요. 다른 기업들과 ‘포인트 동맹’을 만들어 각종 혜택을 내거는 게 이 회사의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CJ ENM과 협력해 티빙의 주문형비디오(VOD) 무제한 이용권을 멤버십 혜택으로 추가하는 식이지요. 신세계와도 통합 멤버십을 논의 중인데, 이마트 등 신세계 계열사 전국 오프라인 매장에서 네이버페이를 사용하고 적립할 수 있는 구조가 유력합니다. 이베이코리아 인수까지 더해지면 네이버와 G마켓·옥션·신세계백화점·SSG닷컴·이마트 등을 통합한 멤버십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겠죠. 지난해 말 기준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가입자는 250만명을 기록했습니다. 빠른 배송을 내세운 쿠팡 ‘로켓와우’ 회원은 470만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잠깐, 몸값이 4조원?

그런데요, 네이버가 이베이코리아에 굳이 투자까지 해야 하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이베이코리아는 16년 연속흑자를 달성한 데다 충성고객도 탄탄합니다. 단적인 예로 스마일페이 회원은 1600만명에 달하지요. 한계는 오픈마켓에만 치우쳐 있다는 건데요. 최저가를 찾으러 들어가는 곳이라 수익성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유의미한 오프라인 기반도 없고요. 신선식품이 중심인 신세계 입장에선 ▷공산품 등 오픈마켓을 한번에 잡고 ▷20년치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고 ▷개발자를 포함한 인적자원까지 흡수할 수 있는 기회이지만, 네이버의 구미가 당길 만한 매물은 아니죠. 영역이 겹치는 것도 사실이고요. 왕년에 잘 나갔다 한들 지금은 영업이익률도 5% 안팎에서 늘어나지 않고 있는데 몸값도 과하다 싶게 높습니다. 참고로 이베이는 인수가로 5조원을 원했는데요. 참전을 고심하던 카카오는 일찍이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포기하기도 했었죠.

△만약 신세계가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성공해 ‘쿠팡화’를 이루게 된다면 네이버와의 ‘혈맹’은 어떻게 될까요. 이커머스 업계 한 관계자는 “신세계·네이버의 가장 큰 경쟁자는 쿠팡이라 두 회사가 ‘공동의 적’ 앞에서 뭉쳤지만 관계가 견고하지 않아 언젠가는 돌아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사진=네이버)

공정거래위원회의 ‘등판’도 고민거리입니다. 네이버는 작년 말 기준 거래액 27조원을 기록, 국내 이커머스 시장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3위인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려면 기업결함 심사 문턱을 넘어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네이버는 가격비교 서비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성 시비도 불가피하겠죠. 지난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네이버가 자사 오픈마켓인 ‘스마트스토어’ 또는 네이버페이에 등록된 판매자의 상품을 검색결과 상단에 우선 노출한다는 신고를 받고 조사에 들어갔는데요. 결과적으로 지난해 네이버에게 26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네이버는 ‘불복’ 소송에 들어갔지요. 당시 신고를 했던 사업자가 바로 이베이코리아였습니다. 네이버가 이베이코리아의 지분을 확보한다면 다른 오픈마켓들이 가자미눈을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복잡하네요. 네이버가 굳이 무리해서 이 판에 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여태 투자 참여를 놓고 고민해온 건 신세계와의 ‘동맹’이 가장 큰 동기였을 겁니다. 이베이코리아에겐 관심 없어도, 신세계의 손은 놓칠 수 없으니까요.

이날 네이버는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한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입찰 절차에 참여한 바 있으나 본입찰은 계속 진행 중”이라며 “참여방식 또는 최종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선택의 여지를 남겨뒀네요. 요란했던 이베이코리아 인수전, 네이버가 ‘손 안 대고 코 푸는’ 결론이 내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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